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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대한민국 1%’… 그 솔직한 민낯

입력 : 2017-08-03 21:06:31 수정 : 2017-08-03 21: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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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 장편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기득권층 전용 사우나에 취직한 소설가 / 재력과 권력 쥔 상류층의 특권 의식 관찰 / 촛불혁명·탄핵 등 바라보는 시선 은유적
부자들과 기득권층을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시각을 비난하는 것도 물론 부당하다. 이 사이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여기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전용으로 드나드는 신도시 피트니스클럽이 있다. 이름하여 ‘헬라홀’. 회원 중에는 기업 대표도 있고 퇴직 판사에 전직 사단장도 있다. 자잘한 사업가들이야 자잘한 자갈이나 다름없다. 평균연령 65세. 이곳에 달랑 단편 세 편이 생산량의 전부인 소설가 룸펜이 사우나 매니저로 들어가 일하면서 자칭 대한민국 1퍼센트의 벌거벗은 행태를 관찰한다. 소설로 펴낸 그 보고서가 올 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살기 좋은 나라?’인데, 제목이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나무옆의자)로 바뀌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종편 채널을 제목에 넣어 자칭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를 그려낸 소설가 박생강. 그는 “이 제목에 정치적인 은유는 없으며 추앙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아니다”면서 “그게 내가 일했던 세계를 정의하는 또 다른 문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나무옆의자 제공
소설 쓰는 사우나 매니저 손태권은 ‘가난한 문학의 나라에서 부유한 피트니스의 나라로 향한 이주노동자’이다. 그가 팀장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장면의 대화들. “손님들이 혹시라도 태권 씨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면 안 됩니다.” “제가 미소가 아름다운 편이 아닌데요. 혹시 쪼갠다고 생각하면 어쩌죠?” “아닙니다. 아마 회원님들께선 우리 같은 사람이 함부로 자신들을 비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할 거예요. 이 안에서도 늘 1퍼센트의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까요.” “우와, 여기서 우리는 완전 을이네.” “무슨 소리! 우리는 여기서 을이 아닙니다. 그냥 병이에요. 자, 찌푸리지 말고 얼른 스마일.”

소설가는 수건을 챙기고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고 막힌 구멍을 뚫어가면서 이곳에 적응해나간다. 그가 보는 것은 바깥에서 아무리 거들먹거리는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라도 모두 같은 운동복을 입고 ‘똥배’를 드러낸 채 성욕과 무관하게 처진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평범한 인간들이다. 이들이 로커룸이나 파우더룸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속삭이거나 큰소리로 외치는 말들까지 평범한 건 아니다. “이번에 투자해서 몇 억이 한 번에 통장에 들어왔어. 그걸 보니까 너무 좋아서 미치겠는 거야. 큰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막 쌀 거 같아. 그래서 내일 또 누구 만나기로 했잖아. 투자 건 수 때문에. 그거 제대로 회수할 때까지는 불안해 미칠 건데, 그래도 어떡해. 그 맛에 사는데.”

‘좋아서 미칠 것 같은’ 통화를 하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운명이 슬픈’ 치과의사도 있다. “나 언제까지 영감탱이들 썩은 잇몸에 임플란트나 박으며 살아야 될까? 이런 운명 슬프지 않아? 평생 입 냄새 맡으면서 돈 벌어야 하고…. 강남에 빌딩 두세 채씩 가지고 있는 놈들은 얼마나 살기 좋을까? 골프 치러 다니다가 그냥 스마트폰으로 통장 잔고나 확인하면 되고. 세상 참 불공평해.” 소설을 쓴다는 사우나 매니저 앞에서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 대해 아는 척했다가 머쓱해진 1퍼센트 사내의 대사는 어떤가. “그 ‘토지’ 쓴 소설가가 조정래 아니야? …씨발 그래. 난 그런 거 잘 몰라. ‘토지’를 누가 썼든 알게 뭐냐고? 하지만 대한민국 노른자 땅이 어딘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럼 된 거지, 소설가?”

소설가는 이들이 휴게실 의자에 앉아 저녁 뉴스를 보며 화를 낼 때는 사람이 달라보였다고 쓴다. 그들이 화를 내는 뉴스는 주로 노동자 시위나 파업에 대한 것들이었고 그런 뉴스를 볼 때면 허, 기가 차서, 미친 놈들, 같은 말을 아랫배를 턱턱 치며 가래 뱉듯 내뱉었다. 마뜩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바로 골프채널로 바뀌곤 했다. 이들과 함께 1년여를 직접 사우나 매니저로 체험한 작가는 그곳에 있다 보니 ‘물처럼 투명해지더라’고 소설에 썼다. 관찰만 할 뿐 날을 세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소설가에게 작가는 답한다. 그건 자신이 헬라홀에서 보았던 1퍼센트 남자들이 보여준 1퍼센트 남자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과도 다른 듯 비슷하다고. 그가 헬라홀을 떠나던 날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었다. 그날 관찰한 헬라홀 사람들에 대한 보고.

“그날 헬라홀의 노인들은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로커룸과 목욕탕을 돌아다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거운 먹구름이 헬라홀에 잔뜩 껴 있었다. 그들은 아랫것인 국민들의 항의에 중간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표결로 1퍼센트의 권력자를 밀어내는 현실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세상이 바뀐 거니까. 더군다나 헬라홀의 노인들은 스스로 평범한 국민보다 대통령에 가까운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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