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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기생 도시?" 일제가 왜곡한 신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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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9 15:00:00 수정 : 2017-07-29 14: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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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일본인 학자들은 식민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라사 연구에 몰두했다. 이들은 신라사 각 분야에 대한 사학적 모델을 구축했지만, 객관적인 학문적 견해가 결여된 채 왜곡된 해석을 내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일제강점기 언론의 신라상 왜곡’은 언론에 나타난 이 같은 신라 이미지 조작 사례를 모은 책이다.

책은 일제가 조선을 압박했던 188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여론을 주도했던 조선총독부 관보와 신문, 잡지 등에 게재된 기사를 분석했다.

강희정 서강대 교수는 ‘신라 경주신화 왜곡상’에서 일본인들이 경주를 기생의 도시로 만드는 한편, 의욕적으로 고적(古蹟)을 강조하고 경주를 ‘조선 유산의 보고’로 홍보했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일제는 신라의 수도, 천년 고도(古都) 경주라는 명백한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과장했다”며 “이는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한 의도적인 조작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경주 시가를 정비하고 유적을 복원함으로써 마치 선진 문명국인 일본이 야만의 식민지 조선에 시혜를 베푼 것처럼 홍보했다”고 강조한다.

일제는 신라의 장소뿐만 아니라 신라 인물과 역사의 왜곡도 시도했다. 김덕원 명지대 강사는 일제강점기 언론에서 ‘신라 인물’을 분석해 보면 화랑도의 계율 중에서도 ‘임전무퇴’(臨戰無退)를 강조하는 경향이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천황에 대한 ‘충’(忠)을 구현하려는 의미였다고 꼬집는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김창겸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제는 경주에서 많은 문화재를 수탈하고, 경주역 주변에 일본풍 건물을 대대적으로 건립했다”며 “일제강점기에 신라의 역사문화가 왜곡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언론 매체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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