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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美에 종속된 日… ‘패전 부인’ 기만 통했다

입력 : 2017-07-29 03:00:00 수정 : 2017-07-28 19: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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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처리 美, 소련 공산세력 남하에 긴장
천황제 인정하고 전범자들에 면죄부 제공
日 군국주의 세력, 美 지원 업고 권력 회복
한국전 특수?베트남전 통해 경제대국 되자
배부른 日 국민, 전범의 책임 눈감아줘
일본의 일반 국민은 지금도 태평양전쟁의 실체를 잘 모른다. ‘대동아공영권’이란 허황된 슬로건은 일본 보수 우익세력의 전쟁 구호였다. 패전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민주 국가의 길을 택했지만, 지난 70여 년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5년여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과 4년을 이어온 아베 신조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 정치 세력은 장기집권을 공고히 하고 있다.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는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꼬여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직시하려는 양심적 인사들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일본의 소장 정치학자인 시라이 사토시(白井聰) 교토 세이카(精華)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시라이 교수는 국수주의에 함몰된 역사 인식을 폐기하라고 지적했다. 우익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지배층인 보수 정치세력, 그들은 지금도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패전을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이유는 허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제국주의자들이 전후에도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패전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했다. 그래서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고 모호하게 규정했다. 이런 속임수와 기만이 통했던 이유는 대미 종속 구조 때문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의 슬로건을 내건 일본 군국주 의자들이 전쟁으로 전 국민을 내몰기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극동군사재판(도쿄 전범재판)에 출두한 A급 전범 도조 히데 키.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하자 미국은 일본의 탈군국주의를 모색했다. 하지만 소련을 맹주로 한 공산 세력이 팽창하면서 아시아에 강력한 반공 정부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따라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의 천황제를 인정하고 전범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전전(戰前) 지배세력에 전후 일본의 통치를 맡겼다. 당시는 급박했다. 일본마저 소련 블록에 넘어가면 동아시아가 소련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배경을 통해 군국주의 일본 보수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전의 권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미 종속 구조와 영속패전 체제가 뿌리 깊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다시말해 아직도 일본은 패전 체제다.

또한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은 냉전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실제 일본 경제는 6·25전쟁 특수로 되살아났고, 베트남전쟁을 통해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민은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며 대미 종속 전범들도 전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패전을 부인해도 인정받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구도는 중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경우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일본과 중국 사이에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아야 한다. 갈등 구조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일본 지배층은 이런 체제를 즐기면서 정권을 연명하고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붕괴 사태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고 수습 과정은 ‘패전의 부인’과 똑같은 구조로 되풀이되고 있다. 일본의 극우 지배자들은 ‘전쟁에서 이겼다’고 차마 말하지 못한다. 다만 ‘전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본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를 정당화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 국민, 즉 대중이 이런 경향을 지지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일본 국민이 패전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역사 인식의 변화는 결국 현실의 변화로 이어진다. 미몽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역사 인식을 제대로 하는 데 있다.

19세기 개혁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주창한 탈아입구(脫亞入歐)는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에 진입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촉구한 인물이다. 그러나 150여 년 전과 지금은 너무 다르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중국의 성장은 아시아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도 우려할 만한다. 저자는 “이 책은 전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전후 일본의 문제를 다시금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논의의 참신함보다 ‘진실의 목소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대치 구도로만 바라본다면 일본도 한국도 온전한 독립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미래도 밝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지배권력은 패전 사실을 떳떳이 인정할 수 없으므로 영토 문제의 합리적 해결 능력은 밑바닥부터 결여돼 있다”며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는 무조건 우리 땅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남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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