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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무게 감당못해… 광기로 헤매는 숲속의 밤

입력 : 2017-07-27 21:08:12 수정 : 2017-07-28 09: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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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퇴고 거쳐 재출간 한 日 마루야마 겐지 장편 ‘파랑새의 밤’
마루야먀 겐지(74)의 장편 ‘파랑새의 밤’(바다출판사)은 ‘위험한’ 소설이다. 읽기에 따라서는 이 소설로 인해 ‘짐승’으로 환원될 수도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광활한 자유가 느껴지는가 하면 죽기 위해 광분하는 염세주의자의 도저한 허무가 깔려 있고, 토막 살인과 파랑새와 원숭이와 물참나무가 어우러지는 야생의 생생함이 펼쳐진다. 안온한 위로를 선사하는 잔잔한 소설을 기대한다면 외면하는 게 좋다. 일본 문단에서 ‘기인’으로 통하는 마루야마 겐지가 2000년에 발표한 이후 14년에 걸쳐 퇴고해 내놓은 장편이다.

‘나’는 병을 얻어 고향 ‘가자무라’의 산으로 돌아온 ‘좌절한 남자’다. 55세. 버스에서 내리자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양복은 벗어던지고, 와이셔츠는 쫙쫙 찢어버리고, 넥타이와 구두는 분뇨 구덩이에 처박았다. 누이는 누군가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그 일을 계기로 아우는 사람을 죽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어머니는 자살했으며 아버지도 사망했다.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숲속을 헤매는 짐승 같은 캐릭터를 시적인 문체로 묘사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 그는 “가능하다면 광기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고 ‘파랑새의 밤’에 썼다.
바다출판사 제공
아내는 나에게 아이를 낳을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떠났다. 가족이라는 관계로 엮이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나에 비해 아내는 고아 출신으로 행복의 상징이 ‘가족’이라고 내면화시켜 온 여자였다. 홀로 산골을 탈출해 도시에서 최고학부를 나와 월급이 많은 직장에서 사회인으로 출발한 이래 온몸을 바쳐 일을 하다가 퇴출된 신세다. 그는 퇴직금을 현금으로 가방 밑에 깔고 고향 산으로 돌아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칩거한다. 문어발처럼 줄기가 뒤얽혀 있는 물참나무의 지상 5미터 높이에 늘어놓은 판자 위에서 생활하는 한편으로 공동묘지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누워 죽음을 연습한다. 지병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그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구질구질하게 생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염세는 대단하다. 

“어차피 나는 결함 있는 인간이다. 머지않아, 아마도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나는 보기에도 무참한 모습으로 숨이 끊어질 것이다. 삶에 집착한 나머지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다. 제2의 인생 따윈 필요 없다. 내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죽는 방식이다. 죽음은 처음부터 각오한 상태다.”

뚜렷한 서사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향 산속에서 몇 가지 일을 행한다. 누이의 살인범인 줄 알고 잘못 복수를 행한 대가로 쫓겨다니다 폐가로 변한 생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우를 찾아내고, 그 집과 아우를 불태우는 일. 누이를 토막살인한 진짜 범인을 단죄하기 위해 산속의 한 청년 뒤를 쫓다가 폭풍이 몰아치던 날 산 정상에서 그와 대결하고 그 자신이 다시 고향 산의 운명으로 돌아가는 정도가 이야기의 전부다. 이 소설이 주는 미덕은 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의 광기와 독백과 주변 야생에 대한 묘사가 자극하는 몽환적인 사색의 체험일 것이다. 가족과 사회의 모든 인연에서 스스로 떨어져나와 죽을 자유를 누리면서 마음껏 산속을 헤매는 이의 초상이 주는 기이한 해방감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생애 처음 쓴 단편 ‘여름의 흐름’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작가가 된 이래 오로지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의 북알프스로 불리는 고향 오마치로 돌아가 집필에 전념해온 작가다. 문단과 인연을 끊고 주겠다는 문학상도 모두 거절한 채 오로지 자신이 쓰고 싶은 글만 수도자처럼 써온 이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물의 가족’이나 ‘달에 울다’ 같은 장편이 대표적으로 소개돼 있고 마니아층도 두껍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가의 각오’ 같은 산문들은 그의 타고난 자유인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파랑새의 밤’에 등장하는 작가의 페르소나는 자유인을 넘어서서 달밤에 광기로 포효하는,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숲속을 헤매는 짐승 같다. 그 모습에 공감을 하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 주는 자연친화적 생명력은 겐지의 이 소설에 비하면 얌전한 동화 같은 것이다.

어디로 폭발할지 모르는 ‘나’의 내면 ‘파랑새’는 모두에게 맹목적인 찬사의 대상인 자연마저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때로는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자학과 가학, 야생과 광기가 뒤엉킨 ‘파랑새의 밤’은 서늘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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