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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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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5 21:31:22 수정 : 2017-07-25 23: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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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TV’, 괜찮은 구상이지만 / 최우선적으로 속도 조절에 신경써야 국가 지도자에게 국민과 소통할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나치 독일에 대한 항전을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에겐 라디오가 소중한 도구였다. 처칠은 하원 연설을 마친 뒤 대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같은 연설을 재탕했다. 효과는? 영국 언론인 샘 리스가 쓴 ‘레토릭’에 따르면 후자가 단연 컸다고 한다. 처칠의 라디오 연설은 의회 연설과 달리 야당 야유에 방해 받는 법 없이 호소력 있게 전국으로 흘러 나갔다. 전시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그렇게 축적됐다.

라디오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도 소중한 도구였다. 루스벨트는 1주 1회꼴의 라디오 연설로 소통했다. 이른바 ‘노변담화’다. 그는 그 담화를 통해 대공황기의 국민에게 뉴딜정책을 설명하고 은행 예금을 빼지 말라는 등의 호소를 했다. 라디오를 그렇게 효과적으로 활용한 루스벨트도 처칠의 박력엔 두 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1940년 처칠의 라디오 연설을 듣고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저 영감이 총리로 있는 한 영국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 같군.”

이승현 편집인
문재인정부가 ‘청와대TV’를 만든다고 한다. 전용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출연도 검토 중인 모양이다. 방점은 ‘직접 소통’에 찍힌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제 “언론 매체 등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다. TV·인터넷이 아무래도 라디오보다 강력하다. 청와대TV는 처칠의 라디오 연설, 루스벨트의 노변담화를 되살리는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소통은 설득력의 원천이다. 1960년 ‘대통령의 권력’을 쓴 미국 학자 리처드 노이슈타트는 잘라 말했다. 대통령 성패는 설득력에 달려있다고. 정치학자 제프리 툴리스는 ‘수사적 대통령’이란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역시 소통 능력을 주목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봐도 청와대TV는 괜찮은 구상이다. 국정 성공을 위한 소중한 도구가, 행운의 마스코트가 될 수 있다. 시운도 좋다. 전임자의 불통 리더십으로 야기된 국가적 상처가 큰 만큼 대조 효과가 클 수 있다. 청와대가 언론을 통한 대국민 소통도 원활히 하면서 직접 소통을 중시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유념할 것도 있다. 소통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들 부시 실패담이 반면교사감이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엄습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극도로 무기력했다. 부시는 그 와중에도 소통에는, 적어도 이미지에는 신경을 썼다. 심지어 당시 부실 수습의 책임이 컸던 연방비상재난관리청(FEMA) 청장의 공보비서가 방송회견에 임하는 청장에게 생뚱맞게 조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십시오. 대통령도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습니다.”

소통은 필요조건의 하나다. 그러나 충분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 실력이다. 재해 등의 위기에 맞설 실력, 국민 일상을 돌볼 실력, 바로 그런 본질적인 부분에서 실망이나 분노, 의구심을 낳지 말아야 국정이 순항한다. 부시는 거기서 걸렸기에 무능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미국 현직인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 6개월 지지율이 밑바닥을 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력이 없으면 첨단 도구인 트위터도 무용지물이다.

문재인정부의 당면 문제는 과속으로 요약된다. 탈원전부터 증세까지 온통 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하나하나가 다 민생과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폭탄급 사안이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런 판국에 어제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못박기까지 했으니…. ‘찬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다’는 속담도 모르는 것일까.

과속은 필연적으로 때 이른 실력 검증과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조만간 묻게 될 것이다. 대체 어쩌려고 일을 크게 벌였느냐고, 어찌 수습할 것이냐고. 청와대TV 등의 소통으로 해결한다? 오산이다. 처칠의 카리스마로도, 루스벨트의 호소력으로도 역부족일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더 늦기 전에 국민과 보조를 맞춰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부작용 최소화에 주력해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 아프리카 속담도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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