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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예약등 켜고 '가려받기'…더 교묘해진 '택시 승차거부'

입력 : 2017-07-24 19:57:41 수정 : 2017-07-25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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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 빈차 복귀할까 염려/늦은 밤 시 외곽지역 운행 기피/호출앱 근거리 콜 무시 ‘다반사’/반대편 타야한다며 하차 유도/기사들 “사납금 채우기 자구책”
지난 21일 오후 11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강서구에 사는 김모(31)씨는 택시를 잡기 위해 20분가량 도로변에서 서성거렸다. 편도 4차로의 대로지만 빈택시 자체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의 흥겨움은 이내 사라지고 짜증이 치밀었다.

비슷한 시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경복궁역 인근에서는 사뭇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빈차’임을 알리는 빨간등을 켠 택시가 줄지어 운행하며 귀가를 서두르는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서울 도심의 대로에서 택시를 두고 상반된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는 뭘까. 택시기사들의 ‘손님 가려받기’ 때문이다.

김씨가 택시를 잡으려던 곳은 강서구, 은평구로 향하는 길목이다. 늦은 밤에 여기에서 승객을 태우고 서울 외곽의 주거지역인 강서구, 은평구로 갔다가 돌아나올 때 승객을 태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기사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쪽으로는 운행 자체를 꺼린다. 반면 경복궁역 인근은 강남구, 동대문구 등 상업지구로 연결되는 도로라 오가며 승객을 태우기가 수월하다.

잊을 만하면 택시요금은 오르고 그때마다 택시 업계와 당국은 서비스 질을 개선하겠다며 목청을 높이지만 택시들의 ‘얌체 운행’은 근절되지 않아 승객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당국의 단속 강화로 노골적인 승차거부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승차거부 민원 건수는 2013년 1만4718건, 2014년 9477건, 2015년 7760건, 지난해 7360건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하지만 승객들이 직접 확인하기 힘든 손님 가려받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정 장소로의 운행을 꺼리는 것은 물론 택시콜 업체로부터 호출을 받아도 수익이 적은 근거리나 주거지역으로의 운행을 거부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원치 않는 손님의 탑승을 차단하기 위해 ‘예약’이라고 적힌 녹색등을 켜고 다니는 택시도 상당하다. 10년차인 택시기사 A(49)씨는 “상당히 많은 기사들이 손님을 가려받기 위해 예약등을 켜놓고 주행한다”고 털어놨다.

승객의 하차를 일부러 유도하는 것도 단골로 등장하는 손님 가려받기 수법이다. 지난 21일 오후 4시쯤 취재를 위해 여의도에서 택시를 잡아 종로로 운행을 부탁하자 기사는 “반대편에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향이 맞다”며 운행을 고집하자 “(지금 광화문에 가면) 나오기 힘든데…”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직장인들이 많은 광화문 일대로의 운행을 피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이 같은 행태는 2013년 10월 기본요금을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리며 서울시와 택시업계가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고 한 약속이 공염불이었음을 보여준다.

택시기사들은 손님 가려받기가 사납금을 채우고 일정한 소득을 얻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법인택시의 기사들은 하루 평균 11.7시간을 일해 하루 사납금 12만5000∼14만5000원을 채우고 한 달 120∼200만원의 수익을 얻었다. 택시 운행 7년차인 B(58)씨는 “손님을 가려받지 않으면 하루 수입이 많게는 4만∼5만원 정도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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