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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당신은 ‘결혼 평가단’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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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6 21:30:32 수정 : 2017-07-16 22: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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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결혼하는 게 수상하고 천박하다. 재력만 따지며 사람 만나는 애로 유명했는데 결국 서둘러 일을 끝냈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하객이 각종 음모론을 늘어 놓으며 신부를 신랄하게 헐뜯는 것을 들었다. 매섭게 쏘아보았으나 험담을 멈추지 않아 결국 조용히 해 달라며 목소리까지 높였다. 분명 신부 대기실을 찾아와선 “너무 아름답다, 축하해”라고 찬사를 연발하던 ‘예의 바른’ 하객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사람과 함께 친구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자니 화가 치밀었다. 물론 절친을 비웃어서 화가 났지만 나도 모르게 입술까지 깨물며 경멸의 눈빛을 보낸 것은, 그 조롱이 나를 향한 비수로 가슴을 깊이 찔렀기 때문이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신부와 신랑을 ‘스펙’으로만 저울질하며 축하 대신 ‘점수 매기기’를 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그 저울대에 나란히 올라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언제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결혼식에 그런 ‘결혼 평가단’들이 등장해 ‘누가 아까운지’를 논평하며 이 결혼이 축복받을 만한 것인지를 결정하려 든다면 말할 수 없을 만큼 씁쓸할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결혼 평가단들은 하객의 규모, 음식의 질, 신랑신부는 물론 그들 부모의 직업, 외모는 물론 재력과 학력을 하나씩 대조하며 평가한다. 만약 그들이 생각했을 때 여러모로 한쪽 조건이 기운다면, 나머지 한쪽에게는 ‘현명하지 못하다’는 딱지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결혼 평가단을 비난하는 나 역시 언제부턴가 결혼식에 와서 주인공들을 마냥 축하하기보다는 엉뚱하게 ‘걱정’부터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지난해 결혼을 한 대학 선배가 “이제까지 모은 돈 전부를 결혼하는 데 썼다”며 푸념을 늘어놓은 이후 결혼식에 오면 엉뚱하게 당사자들의 통장 잔고까지 걱정하기 시작한 것. 결혼하는 커플이 몇 번의 싸움과 헤어짐의 위기를 극복했을지 등까지 걱정하는데, 결국 무의식적으로 시작한 남 걱정의 연원은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어쩌면 ‘결혼 평가단’ 역시 저울대에 올라 냉혹한 평가를 당해본 피해자들일지 모른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와 비교하는 주변인들에게 시달려 혹여 타인 역시 자신처럼 불행해질까봐 지레 걱정을 하는지도 모른다. 경제난으로 팍팍한 살림살이를 견뎌나가면서, ‘처음부터 조금 더 풍족한 배우자를 만났다면 행복했을 텐데’ 하며 후회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혹은 ‘삼포세대’라는 말이 공공연한 요즘 부모 된 마음에 당신 자식들은 모쪼록 미래에 유복한 배우자를 만나 안락한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것인지도.

여러모로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게 그저 때 되면 자연스레 성사되는 삶의 여정이 아니라 노력 끝에 쟁취해야 하는 특별한 것이 되면서부터 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게 어려운 일이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누군가는 평가를, 어떤 이는 걱정을, 또 다른 이는 질투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앞으로도 각종 고난을 이겨나갈 커플의 ‘소중한 순간’에 목청을 높여 평가회를 여는 일만은 부디 삼가는 것. 그게 하객의 예절 아닐까.

김라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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