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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등 100여곳 빈자리 / 논공행상 속 물밑 줄대기 경쟁 / 정권마다 막후 실세 논란 / 비선 발호 못하게 해야 김대중정부 시절 권노갑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일자리를 챙겨주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말했다. 소장파 리더 정동영씨가 청와대에 들어가 막후실세 권씨의 2선후퇴를 요구하면서 정풍운동이 시작되자 나온 항변이었다. 당시 권씨의 평창동 집 골목에는 승용차에서 거실의 전등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이었다.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 추천이 여기서 조정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직후 전직 대기업 고위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 박근혜정부 초기에 ‘물먹은’ 사람들이 모여 고백담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당시 실세로 추정됐던 인물에게 줄을 댔다가 ‘망했다’고 했다. 다른 기업은 최순실씨에게 줄을 댔다.

한용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가 박수갈채 속에 순항 중이다. 국정원의 정치사찰 중단, 구내식당 식사, 낡은 등산복, 뒷굽 닳은 구두 등 감동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장관 및 청와대 참모 인선과 관련해 야당이 공약 파기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국민은 관용적이다. 청와대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해 정책실장이 아닌 비서실장 밑에 두고 국가재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는지 살피고 대통령에게 직보하게 만든 것은 한쪽 말만 듣지 않겠다는 상징적 인사다. 국정원과 검찰, 경호실의 힘을 뺀 것도 다른 쪽의 의견 개진 통로를 열어놓은 효과가 있다.

박수갈채가 이어질지 가늠할 수 있는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다. 새 장관들이 취임하면서 정부산하기관 및 공공기관의 수장들에 대한 물갈이가 시작됐다. 공공 및 부설기관 355개 중 수장의 임기가 끝났거나 올해 안에 만료되는 곳이 94개.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와 조폐공사는 사장 자리가 비어 있다. 가스기술공사 울산항만공사 한전KDN 방송광고진흥공사 등은 사장 임기가 만료된다. 공무원연금공단 무역투자진흥공사 등 준정부기관 29곳의 기관장 임기도 올해 종료된다. 강원랜드 88관광개발 등 기타 공공기관 58곳의 기관장 임기도 마찬가지다. 감사 이사까지 포함하면 자리가 엄청나다.

일찌감치 사표를 낸 기관장들이 있다. 친박 인물에다가 낙하산이라며 시끄러웠던 곳들이다. 도로공사의 이사장은 지난주 사표를 냈다. 한국거래소와 코스콤 등 증권유관 기관장들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노동연구원 대한적십자사도 수장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러니 빈자리는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다.

지난 5월부터 사표를 내니마니했던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예술단체는 국립극장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국립극단 등 13곳이다. 수장이 공석인 곳은 4곳이지만 줄사퇴가 예상된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공성이 강한’ 기업들도 눈치를 보고 있다. 대통령의 방미사절단에서 대표가 배제됐던 포스코와 KT 등 기업은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다. YTN은 정권이 바뀐 뒤 사장이 전격 물러났다.

논공행상을 앞두고 정권 창출 기여자들이 물밑에서 밀고 당기는 모습이 관측된다. 청와대가 그동안 따놓은 점수를 보탤지, 까먹을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인사 여부에 달려 있다. 교체대상 인물들의 출구를 어떻게 만들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과거 정권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쳐내서는 곤란하다. 버틴다는 이유로 검찰을 이용해 구속수사를 해서도 안 된다. 적어도 경영실적, 임기만료 등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건실해진다.

새 인물들을 어떻게 채울지는 더욱 중요하다. 원칙과 절차가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나눠 먹기식으로 비치면 점수를 까먹기 십상이다. 막후실세가 주무르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실세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른바 ‘3철’을 경계하라는 게 아니다. 후원금을 냈다거나 권력 핵심과의 사적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가 경계해야 할 당면 숙제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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