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고] 러시아와 한국의 청탁금지법은 ‘다른 길’

관련이슈 기고

입력 : 2017-07-11 01:33:40 수정 : 2017-07-11 01:33: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의 대통령 선거 등으로 관심권에서 잠시 멀어졌던 ‘청탁금지법’이 다시 중심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 임명된 일부 각료가 법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도 한국의 청탁금지법과 비슷한 법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법이 러시아에 도입된 지 6년이나 지났는데도 러시아의 부패 수준은 바뀐 게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러시아판 청탁금지법은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등이 3000루블(약 5만2000원) 이상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선물의 가치가 이 금액을 초과하면 바로 신고해야 하고 그 선물은 국가 소유가 된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이렇게 강력한 법이 왜 효과가 없을까? 이유는 러시아 특유의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일반 시민들이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서 자기 일이 빨리 처리되도록 담당자에게 초콜릿이나 비싸지 않은 술을 주는 것은 구소련부터 자연스럽게 내려온 일반 문화이다. 신호위반이나 불법주차 같은 교통 위반 과태료도 대부분 3000루블을 안 넘기 때문에 경찰관에게 현금으로 주고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사회 맨 아래층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관행은 러시아의 일상 모습이다. 이러한 문화와 실태를 고려하지 않고 법을 만들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일반 시민의 ‘일상비리’가 아니라 고위층의 부정부패다. 기업 차원에서 정부에 부정 로비를 하거나 재정 횡령 등과 같은 범죄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이 법의 한계로 흔히 지적된다.

이 법을 통과시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이 법의 첫 위반자라는 농담도 많았다. 이 법이 시행된 시점에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미국 실리콘 밸리를 방문해서 그 당시 최신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았다. 러시아 네티즌들은 누가 봐도 가격이 3000루블 넘는 스마트폰을 그가 왜 거절하지 않았는지, 해당 기관에 신고했는지를 궁금해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작년 9월 28일부터 청탁금지법이 시행됐다. 부정부패, 부정청탁을 막겠다는 취지의 법으로 한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시행 초기 일부에서 제기된 이 법이 한국 문화를 무너뜨리거나 경제를 위축시킬 거라는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뇌물이나 비리, 부정부패는 꼭 막아야 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이 법은 필요하다. 다만 공직자들이 지나치게 몸조심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있는 것도 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언하긴 이르지만 한국에서도 러시아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러시아보다 일상부패가 훨씬 덜한 한국에서 과연 청탁금지법이 그렇게 큰 변화를 줄 수 있을지도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은 자기 행동을 좀 더 조심하겠지만 기업 내 여러 가지 거래 등을 청탁금지법이 거의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규모 부정청탁을 막는 법이 시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위 ‘일상비리’를 통제하는 법을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갖고 있는 만큼 청탁금지법으로 한국의 법률 시스템도 분명히 한 단계 더 나아질 거라는 점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