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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작품 걸린 순간부터 오롯이 관람객 몫… 무언가 가르친다는 생각부터 내려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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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0 21:07:41 수정 : 2017-07-10 21: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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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몰고다니는 최요한 전시감독 자신이 주인공처럼 즐기고 셀프카메라를 찍을 수 있는 전시에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수다를 떨어도 주최 측은 뭐라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감성을 나름대로 풀어놓을 수 있는 해방구로 삼기에 제격이다. 친구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의 소재로 삼으면서 또래의 문화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전시회 주 고객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줄을 서고 있다.

최요한(46) 전시감독이 이런 바람을 선도하고 있다. 2013년 누구도 반기지 않았던 ‘마이클라우 아트토이 전’을 성공시키면서 미술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전시장에선 힙합노래가 흘러나왔고 관객은 몸을 흔들며 흥에 취했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서 오타쿠 정도로 치부되던 아트토이에 대한 인식을 ‘예술’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앞서 2011~2012년에는 패션사진 작가로만 알려져 있던 데이비드 라샤펠 작품을 예술의전당에 걸어 그의 존재를 새롭게 알렸다. 주목을 받았던 2014~2015년 ‘오드리 헵번 전’과 2016년 거리예술가 ‘미스터 브레인워시전’도 그가 기획했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이라는 최요한 감독. 그는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남정탁 기자
요즘 그는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그는 누적관객 48만명에 고정 팬만도 10만명을 몰고다닌다. 이처럼 스타 아트디렉터로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주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는 9월 부산 웹툰글로벌센터에서 열리는 허영만-윤태호 만화전은 ‘만화일기와 미생의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동물그림으로 유명한 팅가팅가 작품을 소재로 사파리 콘셉트의 전시를 갤러리 포레에서 펼칠 계획이다.

“해외 유명 큐레이터와 작가들을 만나면서 배운 것이 있다. 예술 전시를 너무 교육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얘기다. 작품이 전시장에 내걸리는 순간 모든 것은 관람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유로워지고 넓어진다. 뉴욕현대미술관과 일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DJ를 불러 관객과 춤추고 노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관람객의 시각에서 자신의 콘셉트를 구성해 간다. 오드리 헵번 전시가 대표적 사례다. “그동안 오드리 헵번 전시는 누가 사진을 찍었느냐에 초점을 맞춘 사진작가가 부각되는 전시였다. 나는 전시를 통해 오드리 헵번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패셔너블하지만 너무 한국 엄마 같은 모습에 관람객은 가슴을 열었다.”

그는 영화나 무용처럼 감독과 안무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하는 스타 전시감독을 꿈꾸고 있다. 이미 그는 팬을 몰고다니는 전시감독이다. 철저히 타깃에 맞춘 준비가 밑바탕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시는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방향을 정했다. 초원의 무대에 아이들은 상상력을 풀어놓고 어른들은 상상력을 도발해 보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전시를 마련하면 저절로 성인들에게도 ‘어른 동화’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관점만 제대로 파면 모든 연령층에서 공감을 받게 된다. 파급효과가 전시성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사실 그는 미술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사회체육을 전공한 그는 군제대 후 공연장 알바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화마인드가 생기면서 기업 문화프로모션 중심의 광고대행사까지 차렸다.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아시아매체를 대상으로 한류문화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비보이 공연과 넌버벌 축제를 열고 홍보영상을 만들었다. 스타마케팅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그 즈음 가나아트 이정용 대표로부터 데이비드 라샤펠을 소개받고 미술기획을 권유받았다. 아르바이트생에서 대형 전시를 잇달아 성공시키는 미술계 마이다스의 손으로 변모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미술전시가 숙명처럼 다가왔다. 공연제작사에 투자한 것이 물거품이 되면서 실의에 빠져있던 시기에 전시얘기가 오갔던 데이비드 라샤펠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는 파산하고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는 회사가 파산해 안타깝지만 전시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라샤펠에게 전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라샤펠이 ‘너는 망하지 않았다. 회사가 망했을 뿐이지 너는 살아 있는 게 아니냐’며 격려하고 기회를 줬다. 전시는 성공으로 이어져 재기의 발판이 됐다.”

결국 라샤펠이 그를 믿고 전시계약을 해 준 것이다. 늘 그는 ‘세상에 이런 전시가 있나’ 할 정도의 색다르고 충격적인 기획을 추구하고 있다.

“전시는 다름에 대해 느껴보고 의식 확장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냥 보고 느끼라는 식은 곤란하다. 관객에게 서비스를 한다는 정신으로 기획을 끌고가야 한다.”

그는 국내의 열악한 기획여건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질의 문화콘텐츠 현장이 고사되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관들은 쥐꼬리 예산으로 볼 만한 기획전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기획사들의 대형 전시마저도 돈벌이로만 취급돼 기업 등이 후원을 잘 안 하고 있다. 문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기업 등의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도록 조세정책을 펴야 한다. 전시 기획을 단순히 흥행사업으로 보는 것은 문제다. 전시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질 높은 문화콘텐츠 생산이 가능해진다.”

그는 그동안 거친 공연계와 광고업계 일을 통해서 많은 이들을 알게 됐다. 외국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난 작가들도 많다. 국내 웬만한 연예인은 그의 친구다.

“전시 때 연예인 친구들의 입소문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요즘 연예인은 현대판 사대부라 할 수 있다. 점차 가치 소통의 중심부 역할을 해 가는 것 같다.”

그는 대형전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을 거듭 강조했다. 다름 아닌 국내의 기부문화 부재다. 뉴욕현대미술관의 경우 연간 수천억원의 후원이 이뤄져 작품구입이나 기획이 자유로운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 진행에는 많은 제작비가 소요된다.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 길이 원칙’을 무시하고 적게 지원하면서 많은 간섭을 하려고 한다. 좋은 기획전시가 나올 수 없는 분위기다.”

그는 기획자가 수익에만 매달리다 보면 부실한 콘텐츠를 뻥튀기하는 데 몰두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 같은 전시에 미친 놈들이 나가 떨어지기 전에 문화풍토가 개선됐으면 한다. 온 국민에게 찌릿한 감동을 주는 전시를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다.”

그의 눈빛이 빛났다. 색소폰연주자인 아버지와 대중가요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DNA의 색다른 변주가 기대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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