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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남아 외교, 숲 아닌 나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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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4 23:41:11 수정 : 2017-07-04 23: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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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영토 넓힐 수 있는 무한 시장 / 아세안을 외교안보적 활용 못해 / 인도네시아와 특수 관계 설정을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세안 특사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기존 4대 강국에 치우친 한국의 외교역량을 아세안까지 확대한다는 명분이었다. 동남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간 아세안의 중요성을 주장해 오던 터라 앞으로 새 정부의 대동남아 외교가 기대된다.

그간 한국의 동남아 외교는 경제교류에 국한되거나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 경험을 전수하는 방향에 치우쳤었다. 그러나 경제논리에 매몰되면 동남아의 속성을 제대로 볼 수 없고, 4강 위주의 외교에만 천착하면 동남아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미얀마에서 아시아 복귀를 강조한 두 번째 임기의 시작은 아직 귓전에 선하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동방정책을 통해 동아시아와 더 가까워지려는 이유도 동남아의 전략적 중요성에 근거한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국제관계학
우리 정부가 아세안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지금보다 한층 더 미시적이고 전략적 판단에 근거해야 하며,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동남아는 우리의 경제영토를 넓힐 수 있는 무한한 시장이다. 2007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표된 이래 교역액이 연 70조원에서 133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으니 아세안이 중국을 대체할 수출 및 생산기지라는 평가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역협력체로서 아세안은 안보위기에 직면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자가 될 수 있지만 역대 정부는 아세안을 외교안보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대규모 공적개발원조(ODA)를 수혜하면서도 베트남, 라오스와 같은 국가는 북한 입장에 서거나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세안이 주최하는 고위급 회담에서도 우리는 아세안을 제쳐두고 중국, 일본과의 대화에만 더 치중했고 언론도 아세안의 외교안보적 가치나 한반도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제 이런 관행은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20년 이상 지속된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아세안은 집단대응체제로 무장해 중국의 양자대화 전략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해양 3국은 역내 이슬람국가(IS)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평화, 자유, 중립이라는 아세안의 창설 원칙은 지역 내 평화와 공존, 그리고 비핵화로 현실화됐다. 1994년 창설된 아세안지역포럼(ARF)은 최소한 아세안 역내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데 훌륭한 제도다. 또한 아세안은 경제적 번영만큼이나 평화와 안정을 중시 여기므로 한반도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ARF에서도 한반도 문제는 주요 의제이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아세안은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국가의 느슨한 공동체이다. 그러니 아세안에 대한 거시적 외교전략을 설정하고, 차별화된 국가별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에 대한 원조는 한반도 안보를 위한 지렛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국가는 북한과 가깝다.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비난을 완충하는 차원에서 동남아 내 비민주주의국가를 활용하고자 한다.

아세안의 리더인 인도네시아와는 특수한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아세안은 무겁고 엄숙한 회담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사교시간에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높다. 협의를 통한 합의라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적 의사결정 원칙이 아세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니 인도네시아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환기시키면 회원국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나아가 태국의 유연한 외교술도 ‘실용외교’가 필요한 우리에게 교훈을 줄 것이고, 체제 변동에 성공한 미얀마의 발전과정과 베트남, 라오스의 사회주의 성장방식은 북한의 변화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이 될 수 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의 연결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실크로드)전략에 탄력을 받아 더욱 넓은 시장이 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경제적 성장을 넘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주도하려는 아세안의 노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아세안이라는 거대한 숲만을 보지 말고 숲 속 깊이 들어가야 한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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