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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참혹하다. 당 태종에 맞선 안시성 싸움(644년), 살리타이의 몽골군을 꺾은 귀주성 싸움(1231년), 왜군을 재기불능에 빠뜨린 진주성 싸움(1592∼93년)…. 성을 지킨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목숨을 던지지 않으면 부모형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성의 시대? 전장에서 이 말은 철학자의 허망한 소리일 뿐이다.

장진호전투. 참혹한 6·25전쟁에서도 가장 참혹한 싸움이다. 1950년 11월 2일 국군 3사단과 교대한 미 해병 1사단. 북진을 했다. 국군 3사단은 ‘백골사단’으로 불린다. 그즈음 벌어진 함흥 수동전투. 중공군 포로가 처음 잡혔다. 그 포로가 참혹한 싸움을 알리는 신호일 줄이야. 장진호로 몰려든 중공군 12만명. 고립된 미 해병 1사단은 포위망을 뚫는 대작전을 시작했다. 12월 10일 마침내 흥남 후퇴에 성공했다.

미 해병 사상자 3637명·비전투 사상자 3657명, 중공군 전사자 2만5000명. 부상자 1만2500명. 영하 32도까지 떨어진 개마고원. 많은 해병 전사는 혹독한 추위에 희생당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누가 이긴 싸움일까. 중공군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인해전술에 총알받이로 내몰린 중공군 병사들. 그들은 무엇으로 위로 받아야 하나.

장진호전투에는 별칭 하나가 붙는다. ‘위대한 후퇴’. 왜 위대한 걸까. 수많은 목숨을 살렸기 때문이다. 이어 단행된 흥남철수작전. 10만명이 넘는 피난민을 남쪽으로 실어날랐다. 부두를 마지막으로 떠난 메러디스 빅토리아호. 무기까지 버리고 피난민을 태웠다. 전쟁에서 이성을 말할 수 있다면 흥남철수작전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미군 함정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간 문 대통령, 워싱턴DC에서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하는 것으로 방미 일정을 시작한다. 고마움의 표시다. 아쉬운 대목이 있다. 기념비를 세운 사람은 적폐 인사로 지목된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다. 당시 민주당은 비 건립 예산을 삭감했다.

배려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 “세 번 생각해 말하고 행동하라.”(三思一言 三思一行) 세 번은 고사하고 한 번만 더 생각했다면 헌화는 미국인을 감동시키지 않았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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