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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는 가부장제의 산물?… "외손만 적은 족보도 있습니다"

입력 : 2017-06-26 17:15:31 수정 : 2017-06-26 17: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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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19년(1488) 중국 각지를 돌아보고 나서 ‘표해록(漂海錄)’이라는 견문기를 남긴 금남(錦南) 최부(1454∼1504)는 아들 없이 딸만 셋을 뒀다.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보면 최부는 대를 잇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1715년 간행된 ‘금남최선생외손보’에는 최부의 외손이 대대로 기록돼 있다.

당시 책을 펴낸 사람은 후대의 자손을 적을 수 있도록 여백을 충분히 남겨뒀고, 훗날 비어있는 공간에는 순조(재위 1800∼1834) 연간의 자식들까지 적혔다. 표지에 삼성보(參姓譜)라고 쓰인 이 족보는 중요 인물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오른쪽 끝에 그들의 이름을 별도로 표기한 점이 특징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금남최선생외손보를 비롯해 족보 관련 고문헌 66종을 선보이는 기획전 ‘족보, 나의 뿌리를 찾아가다’를 27일부터 8월 27일까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연다.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민들이 20세기 전반에 편찬된 나무 형태 족보인 ‘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전시에서는 금남최선생외손보와 함께 ‘울산김씨내외보’, ‘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1687년 출간된 울산김씨내외보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의 자식도 빠짐없이 기록한 족보인 내외보(內外譜)다. 족보에 기록된 인물을 보면 친손이 20%, 외손이 80%를 차지한다.

김효경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26일 “조선시대는 17세기 중반부터 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바뀐다”며 “금남최선생외손보와 울산김씨내외보는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족보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동등했음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관계자들이 ‘족보, 나의 뿌리를 찾아가다’를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 족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0세기 전반에 편찬된 나주오씨참봉공파화수도는 나주오씨 참봉공파의 구성원 1650여 명을 잎이 무성한 나무 형태로 표시한 족보다. 가로·세로 길이는 80㎝ 내외이며, 족보에 붙은 화수도(花樹圖)라는 명칭은 꽃이 피는 나무 그림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족보의 역사, 족보 들여다보기, 다양한 신분의 족보 엿보기, 색다른 족보와 만나다 등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며, 우리나라 족보 외에도 중국과 일본, 베트남, 오키나와의 족보를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선조들은 가문의 유대관계를 강하게 유지하는 수단인 족보를 만드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다양하고 색다른 족보를 통해 한국 특유의 족보 문화를 접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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