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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상명하복식 직장·학교 문화…화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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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5 19:00:00 수정 : 2017-06-26 09: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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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졸업 전까지 무슨 일이든 그저 허허실실 잘 웃어넘기는 성격 덕에 ‘보살’이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던 김보라(31·여)씨. ‘속이 너무 없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지만 이직 후 2년 차에 접어든 김씨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는 평가를 주변인들로부터 듣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혼자 있을 땐 본인도 모르는 사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다 ‘가상의 적’을 향해 뒤늦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등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 ‘단순 스트레스겠지’ 라고 여겼으나 별안간 사무실에서 한 동료의 말에 화가 차올라 호흡이 되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자 병원을 찾게 됐다. 알고 보니 김씨의 병명은 ‘분노조절 장애’, 다른 말로 ‘화병’이었다.

대한민국이 분노조절장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밧줄 절단 추락사건, 충북 청주에서 인터넷 수리기사 살해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잔혹한 살인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파트 외벽 작업자가 켠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며 밧줄을 잘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에 15일 숨진 작업자가 쓰던 밧줄과 애도 국화가 놓여 있다. 양산=연합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 환자는 2012년 4937명에서 2016년 5920명으로 최근 4년 사이 약 20% 증가했다. 분조조절장애를 겪게 되면 분노와 화를 없애기 위해 쉽게 타인에게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고 심지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까지 높아진다. 분노의 감정을 자주 격하게 느끼게 되면 뇌의 신경계가 제대로 조절되지 않아 몸은 긴장되고 흥분 상태로 돌입한다. 이 경우 정상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게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노인을 폭행, 물의를 일으키고도 묵비권을 행사해온 30대 여성. 약 1주일만에 사죄의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유독 최근 들어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청소년학회에서 양적 연구를 토대로 발간한 ‘분노정서 경험 관련 요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이 떨어질수록 타인으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고 상대방에게 분노감이나 적대감을 느낄 확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와 적대감을 경험하지만 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부정적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고 있게 되면 결국 부적절하고 파괴적인 양식으로 ‘분노’가 발현 되는 것이다. 가정은 물론 학교와 직장 등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개개인의 의견, 자아가 쉽게 무시당하고 열심히 한 성과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분노조절장애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심리학회지에서 지난해 말 발표한 ‘억울 경험의 과정과 특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결국 ‘억울하다‘는 정서의 잦은 경험이 분노장애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잘못한 것으로 오해 받아야 하는 상황(38.6%), 두 번째는 ‘나의 진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로 모두 22건(29.1%)이었다. 이어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할 때로 16건(16.6%)이었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그 만큼의 인정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한다면 억울함에 시달리다 분노장애에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분노의 감정이 옳은 방식으로 표출될 수만 있더라도 분노조절장애자들의 증가와 이론인한 각종 사고들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대한민국의 중고교부터 대학은 물론 직장생활까지 ‘상명하복’식의 권위주의가 여전히 팽배하다보니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신화 심리학과 고려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관계 초점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더하여 유교적인 권위의식에 기반 한 위계나 절차의 강조는 대인 관계 시 따라야할 규범들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자존감에 손상을 입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관계 특성이나 상황적 맥락을 고려하여 이를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결정하기도하며 관계를 해칠 위험성이 큰 부정적 정서는 표현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한 마디로 참고 참다가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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