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분노조절장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밧줄 절단 추락사건, 충북 청주에서 인터넷 수리기사 살해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잔혹한 살인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파트 외벽 작업자가 켠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며 밧줄을 잘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에 15일 숨진 작업자가 쓰던 밧줄과 애도 국화가 놓여 있다. 양산=연합 |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노인을 폭행, 물의를 일으키고도 묵비권을 행사해온 30대 여성. 약 1주일만에 사죄의 뜻을 밝혔다. |
그렇다면 유독 최근 들어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청소년학회에서 양적 연구를 토대로 발간한 ‘분노정서 경험 관련 요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이 떨어질수록 타인으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고 상대방에게 분노감이나 적대감을 느낄 확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와 적대감을 경험하지만 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부정적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고 있게 되면 결국 부적절하고 파괴적인 양식으로 ‘분노’가 발현 되는 것이다. 가정은 물론 학교와 직장 등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개개인의 의견, 자아가 쉽게 무시당하고 열심히 한 성과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분노조절장애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심리학회지에서 지난해 말 발표한 ‘억울 경험의 과정과 특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결국 ‘억울하다‘는 정서의 잦은 경험이 분노장애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잘못한 것으로 오해 받아야 하는 상황(38.6%), 두 번째는 ‘나의 진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로 모두 22건(29.1%)이었다. 이어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할 때로 16건(16.6%)이었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그 만큼의 인정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한다면 억울함에 시달리다 분노장애에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분노의 감정이 옳은 방식으로 표출될 수만 있더라도 분노조절장애자들의 증가와 이론인한 각종 사고들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대한민국의 중고교부터 대학은 물론 직장생활까지 ‘상명하복’식의 권위주의가 여전히 팽배하다보니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신화 심리학과 고려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관계 초점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더하여 유교적인 권위의식에 기반 한 위계나 절차의 강조는 대인 관계 시 따라야할 규범들을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자존감에 손상을 입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관계 특성이나 상황적 맥락을 고려하여 이를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결정하기도하며 관계를 해칠 위험성이 큰 부정적 정서는 표현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한 마디로 참고 참다가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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