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밀착취재] 보령댐 잔혹사…“가뭄 피해는 예견된 인재(人災)”

입력 : 2017-06-22 18:27:03 수정 : 2017-06-22 22:01:1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보령댐에만 목맨 충남서부 / 3년째 가뭄… 전국서 가장 심해 / 20년간 지방상수도 폐쇄 정책 / 8개 시군 오직 보령댐만 의존 / 식수·산업·농업용수 모두 공급 / 해마다 물부족 사태에 ‘발동동’ “비가 안 오는 걸 탓하는 게 아녀. 3년째 가뭄인디, 보령댐만 바라보고 있는 게 문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보령댐 물을 여기저기서 갖다 쓰니께 농사 지을 물이 없는 거 아녀. 그래서 가뭄이 인재라는 말이 나오는 거여.”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 충남 보령시 웅천읍. 이태영(62) 보령가뭄대책위원장이 바짝 말라가는 논만큼이나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위원장은 “보령댐이 만들어진 이후 인구 증가와 공장 증설로 사용량은 크게 늘었는데 지금껏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가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하천유지수와 농업용수부터 줄이니 농민이 입는 피해가 말도 못한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의 웅천천. 물이 마른 자리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윤지로 기자


보령댐은 금강 서쪽의 길이 34㎞짜리 웅천천에 만들어진 댐이다. 보령댐 아랫마을인 성동1리의 오병양(67) 이장을 따라 웅천천을 둘러봤다. 댐 아래쪽 웅천천은 천이라기보다는 ‘풀밭에 물이 고여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잡초가 무성했다. 보령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수공)는 하루 4000㎥를 하천유지수로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물이 흘러가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보령화력발전소 양수장 인근에서 논농사(1100평)와 쪽파농사(1000평)를 하는 오씨는 며칠 전부터 웅천천 작은 보에 자바라호스를 연결해 논에 물을 대고 있다고 했다. 그 보도 듬성듬성 돌바닥이 드러나 완전히 마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씨는 “이것마저 마르면 농사는 못 짓는다고 봐야 한다”며 “50년 넘게 농사 지으면서 3년 연속 가뭄을 맞는 건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령댐 잔혹사

보령을 포함한 충남 서부 지역은 전국에서 가뭄이 가장 심한 곳이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충남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166.7㎜로 평년의 47% 수준이다. 특히 보령지역은 이달 들어 11.8㎜밖에 비가 오지 않아 평년(75.3㎜)의 15.7%에 그쳤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문 것은 어쩔 수 없음에도 주민들이 ‘인재’라고 말하는 데는 전국적인 가뭄 상황에서 충남 서부의 물부족이 유달리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뭄 예보와 경보는 크게 기상가뭄과 농업용수 그리고 생활·공업용수 3가지로 구분된다.

지난 13일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6월 가뭄 예·경보에 따르면 기상가뭄 ‘주의’ 단계(6개월 누적강수량 하위 6.5%)인 곳은 전국 33개 지역이다. 여기에는 충남 5개 시군이 포함돼 있다.

전국에서 농업용수 가뭄 ‘주의·심함’ 단계는 10곳, 생활·공업용수 ‘주의·심함’은 14곳이다. 이 가운데 농업용수는 4곳(40%)이, 생활·공업용수는 8곳(57%)이 충남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보령댐의 물을 이용하는 시군(보령, 서산, 당진, 서천, 청양, 홍성, 예산, 태안)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은 전국적으로 비슷한데도 유독 충남 서부 지역이 심각한 물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국장은 “보령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령댐은 1992년 착공해 4년 만에 완공됐다. 보령댐은 연간 공급량이 1억660만㎥로 인근 대청댐(16억5000만㎥)이나 용담댐(11억4300만t)에 비해 체급이 훨씬 작지만, 지난 20년 동안 충남의 모든 화력발전소에 물을 댔다. 1996년만 해도 보령댐에서 용수를 공급받는 화력발전기는 보령화력 6기, 태안·서천화력 각 2기로 총 10기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2기가 가동 중이거나 조만간 가동된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25년쯤 보령댐 수량은 일 평균 9만8600㎥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 공급 체계는 보령댐처럼 ‘큰 물그릇’에서 가져오는 광역상수도와 소규모 취수원을 이용하는 지방상수도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보령댐 물수요가 급증한 지난 20년 동안 수공과 지자체는 보령댐을 도와줄 지방상수도를 개발하기는커녕 폐쇄하는 정책을 펴왔다.

보령댐 건설 후 8개 시군에 있던 26개 지방상수도 중 20개가 폐쇄돼 지금은 6곳만 남았다. 하루 6만7000여㎥의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그 결과 충남 서부권의 광역상수도 의존도는 90%로, 전국 평균(27%)을 3배 웃도는 희한한 구조가 됐다.

보령댐 수익을 얻으려는 수공과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하려는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관로 관리가 어려운 광역상수도 비율이 높다 보니 충남 서부권 누수율은 25%로 전국 평균(11%)보다 훨씬 높다.

보령시는 지방 취수원을 개발하기 위해 2011년 폐쇄된 청라정수장을 지난해 보수해 비상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폐쇄된 정수장 두 곳은 설비 방치 기간이 너무 길어 재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몇년 전까지 지방정수장을 폐쇄하는 게 일종의 추세였다”며 “(가뭄이 이어지다 보니)수원 개발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지만 복구비와 인력문제 등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16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보령화력 양수장 인근 웅천천이 바닥을 드러내자 주민들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굴착기로 땅을 파고 있다.
주민 제공


◆“물관리 일원화로 효율 높여야”

8개 시군이 보령댐만 바라보는 구조가 되다 보니 지역에서는 ‘수공이 물 팔아먹으려고 가뭄 대책에 소홀했다’는 험한 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수공과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가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강 대청댐 물을 끌어오기 위한 대청Ⅲ단계 광역상수도 사업과 충남서부권 광역상수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대청Ⅲ단계는 2015년, 충남서부권은 2017년 사업이 마무리됐어야 하지만 공단 개발계획이 미뤄지면서 사업 완료시점도 각각 2019년과 2021년으로 늦춰졌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사업이 2∼4년 연장된 것도 답답하고 대책이 여전히 광역상수도 확충에 쏠린 것도 분통 터지는 일이다. 모두 물 관리 체계가 이원화한 탓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건설부의 상하수도 업무가 환경부로 넘어온 이래 ‘광역상수도=국토부, 지방상수도=환경부’로 책임 주체가 나뉘었다. 부처 간 업무 중복을 막기 위해 10년 단위로 수도정비기본계획을 짜서 국토부와 지자체, 환경부가 물 공급의 밑그림을 함께 그리도록 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성동1리 오병양 이장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웅천천에 호스를 설치했다. 양수기로 물을 뽑아내는 곳 역시 수량이 많지 않다.
윤지로 기자
환경부 관계자는 “수공과 지자체가 광역상수도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부처 간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충남서부권 광역상수도 사업은 지난 3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이를 두고 환경부는 “우리 부처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국토부는 “수도정비기본계획에 들어있던 내용에 정수장 설치만 하나 추가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어느 쪽 말이 맞든 중요한 건 같은 사안에 대해 두 부처가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효율 때문에 그동안 물관리 일원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일원화 주체를 두고 입장이 팽팽히 맞서 20여년 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학)는 “현재 우리나라는 취수시설 용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실제로는 55%만 취수하고 있다”며 “이미 수자원은 충분히 확보돼 대규모 댐을 만들거나 광역상수도 건설에 애쓸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전국에는 다목적댐 21개를 포함해 하굿둑 등 크고 작은 댐이 1만7000여개가 있다. 개수로는 세계 7위, 국토면적당 밀집도는 세계 1위다.

박 교수는 “국토부는 대형 수자원 개발이라는 소임을 다했다”며 “이제 상수원 관리와 작은 취수원 관리로 갈 때”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수자원학회장인 허준행 연세대 교수(토목·환경공학)는 “환경부 업무 일원화는 왼손으로는 개발하고 오른손으로는 규제하겠다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보령=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