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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사소한 일에도 화 못 참고 ‘버럭’… 툭하면 ‘욱하는 사회’

입력 : 2017-06-21 19:50:36 수정 : 2017-06-21 22: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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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조절장애 시달리는 한국인 / 돌지난 아들 자꾸 보채면 폭발 / ‘상사에 뺨 맞고 부하에 화풀이’ / ‘못된 엄마·상사’ 비춰질까 자책 / “스트레스 탓 뇌 지쳐 조절 장애” / 경우 따라 우발적 범죄로 이어져 / 밧줄 잘라 인부 숨진 사건 대표적 / “분노조절장애·분노 범죄 구분을” / 전문가, 장애로만 해석 땐 ‘면죄부’
“아이가 울고 보채면 참아 보려고는 하는데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고 울고 싶어진다.”

조모(36·여)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육아 휴직 중인 그는 산후 우울증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겹쳐 갓 돌을 지난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잦아졌다. 요즘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는 아닌가 싶어지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못된 엄마’가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직장인 최모(33)씨는 반말과 폭언을 일삼는 직장 상사 탓에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상사에게 직접 항의는 못하고 애꿎은 후배를 상대로 화풀이를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자책감만 깊어진다. 최씨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나 최씨처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편, 불만에도 순간적으로 폭발해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욱하는 사회’와 다름없다. 

2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따르면 ‘외상 후 격분 장애’라고도 하는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을 받은 뒤 분노와 증오의 감정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증상을 말한다. 나도 모르게 욱하며 조절할 수 없는 충동감을 느끼고,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동 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윤대현 교수(정신건강의학)는 “분노조절장애는 성격 장애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낸다든지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건 공감능력 결여와 연관이 있다”며 “공감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뇌가 지쳐 부정적 감정이 많이 생기고 조절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개인주의가 심하면 공감능력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떨어져 과격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며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게 심하다고 판단되면 전문의와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이들의 범죄 또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 주민 서모(41)씨가 15층짜리 아파트 외벽에서 실리콘 코팅 작업을 하던 김모(46)씨의 안전 밧줄을 잘라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씨는 김씨가 작업 중에 켜둔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홧김에 옥상으로 가 밧줄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지난 19일 말다툼을 하던 아내 김모(6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문모(67)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자주 외박해 사이가 안 좋았고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해 그랬다”고 말했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전체 범죄자 177만1390명 중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25만6669명(14.5%)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상해·폭행 등 폭력 범죄자 10명 중 4명 가량(38.6%)이 우발적 범죄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를 범죄 유발 요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대 이수정 일반대학원 교수(범죄심리학)는 “폭력 범죄치고 분노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는데, 요즘엔 분노조절장애란 말을 너무 쉽게 쓰고 분노를 느껴 범죄를 저지르는 걸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기류까지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범행 동기가 납득이 안 되고 화풀이성으로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벌인 범죄는 처벌 수위를 높여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분노 조절에 실패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며 “정신 병리(분노조절장애)로만 보면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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