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사군 낙랑 평양설’ 논란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논쟁 / ‘사이비 역사학’ 고깔모자 씌우며 난장 싸움이나 할 때인가 ‘사이비 역사학’ 소리가 요란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역사관을 두고 번진 논란이다. 도 장관의 말, “일본이 임나(任那)를 가야라고 주장했는데, 일본 지원으로 이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 논문이 많다.” 임나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나오는 그 임나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되받아쳤다. “시인이 뭘 아느냐”, “도종환판 사학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갈등의 불쏘시개는 임나뿐일까. ‘한사군 낙랑(樂浪)은 지금의 평양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도 도마에 올랐다. 언론매체까지 장구를 친다. “낙랑군의 평양설은 통설”이라고. 강단에 선 역사학자라고 모두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말할 리 없건만 사이비 역사학 논란은 들불처럼 번진다. 사관 논쟁 2탄이다.

국정교과서 논쟁 때도, 지금도 꿰뚫는 정서 한 가지가 있다. “내 주장은 옳고 네 주장은 그르다.” 밑바탕에는 아집과 독선이 흐른다. 임나 용어를 쓴 학자를 손보겠다는 장관이나 ‘사이비 고깔모자’를 씌워 싹을 자르고자 하는 역사학자나 똑같다.

강호원 논설위원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통일신라 경덕왕 16년, 757년. 9주(州)의 이름을 바꿨다. 사벌주(沙伐州)는 상주(尙州), 삽량주(?良州)는 양주(良州), 수약주(首若州)는 삭주(朔州), 웅천주(熊川州)는 웅주(熊州)로. 2년 뒤 관직명도 바꿨다. 감(監)은 시랑(侍郞), 대사(大舍)는 낭중(郎中), 사지(舍知)는 집사원외랑(執事員外郞)으로. 삼국사기 기록이다. 역사학자 이병도는 “중국식으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당을 따라 한식화(漢式化)한 것이다. 바꾼 이름이 맞지 않은 옷처럼 느껴졌던 걸까. 17년 뒤 아들 혜공왕은 백관의 호칭을 옛것으로 되돌렸다.

감(監)은 곧 대감이다. 이병도의 풀이다. 대감 위에는 상감(上監)이 있다. ‘감’이라는 우리말이 아직 쓰이는 것은 혜공왕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벌, 삽량, 수약, 웅천, 대사, 사지는 무슨 말일까. 한자어가 아니다.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현한 지명이요, 관직명인 것 같다. 뜻은 무엇일까. 암호처럼 변해 있다.

임나도 똑같다. 단재 신채호가 남긴 글. “고령의 대가야는 ‘밈라가라’라고 한다. 밈라는 이두 문자로 미마나(彌摩那), 임나(任那)라고 썼다.” 가야(加耶), 가라(加羅) 역시 큰 연못을 뜻하는 ‘가라’의 이두식 표기다.

평양(平壤), 낙랑. 가야보다 더 오래된 이름이니 이두식 표현일 것은 자명한 이치다. 신채호의 해석, “평양과 낙랑은 우리말 ‘펴라’다.” 양(壤), 랑(浪)은 모두 내(川)를 이르는 ‘라’의 이두 표기로, 펴라는 물 이름이다. 두 이름은 종족 이동에 따라, 시대에 따라 여기저기 나타난다. 평양의 낙랑은? “한사군의 낙랑군과는 다른 최씨의 낙랑국”이라고 했다.

신채호와 이병도는 근대 역사학의 두 거두다. 한학과 고어에 밝은 신채호는 1910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사서를 두루 읽고, 16살 어린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했다. 관심사가 다르다. 신채호는 북방 역사, 이병도는 한반도 중심의 역사를 공부했다. ‘낙랑군 평양설’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논쟁은 두 사람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걸까. 아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남긴 글. “봉황성이 평양이라고 하면 크게 놀라 요동에 또 평양이 있다니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이냐고 나무란다. … 후세 사람은 망령되게 한사군의 땅을 압록강 안쪽에 끌어넣어 억지로 구차하게 사실로 만들었다.” 박지원은 우리 역사에서 발해를 뺀 삼국사기의 사대주의 전통을 잇는 유학자를 비판했다. 유득공의 발해고도 그즈음 나온다. 낙랑군 평양설 논쟁. 근자의 산물이 아니다.

역사학은 눈과 귀를 틀어막은 논쟁을 먹고사는 괴물이 아니다. 실증을 먹고 자라는 학문이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얼마나 고어를 연구하고 있을까. 우리 역사 편린이 남은 중국 ‘25사(史)’를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난장 싸움을 할 때인가. 선대 학자들처럼 밤새 고어를 연구하고, 25사를 번역해 후대 사가들이 ‘역사 등불’을 환히 밝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