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민주화의 주무부처였지만, 허울뿐이었다. 시장은 믿지 않았고, 공정위 스스로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공정위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는 공정위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공정위는 압수수색을 당했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공정위를 향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정위의 위상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조직 가운데 첫 번째로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내정했다.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지연되자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정도로 힘을 실어줬다.
김 위원장 취임 후 공정위는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재벌 개혁도, 골목상권 보호도, 심지어 치킨값 인하까지 모두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김상조 올마이티(Almighty)’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대부분의 정부 정책이 그렇듯 잘한 일은 묻히고, 잘못한 일은 크게 드러날 게 뻔하다. 재벌은 또 다른 편법을 찾아내려 할 테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한 골목상권 보호도 근본적으로 먼 이야기다. 시장가격 결정은 오롯이 기업 몫이다.
김 위원장도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정위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고 질책도 크다고 생각한다. 이 괴리가 계속된다면, 공정위에 부여된 시대적 책무를 다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정위원장 한 명 바뀌었다고 시장이 흔들리거나 변화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위원장이 오더라도 시장의 역동성은 계속돼야 한다. 김상조 체제의 공정위는 그동안 부작위 상태였던 법과 제도, 시스템을 정비해 제대로 작동하게 할 뿐이다. 그것이 문 대통령이 말한 ‘과정은 공정하게’의 시작이다.
김 위원장은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국가 개입의 현실적 수단인 관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제껏 공정위를 향한 국민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관료의 밖에서 비판 목소리를 높여왔다. 비판뿐만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김 위원장은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 집단을 이끌게 됐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김 위원장이 공정위를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관료집단으로 탈바꿈시키길 기대한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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