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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법조타운] 라이트 형제에 변호사가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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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8 21:42:07 수정 : 2017-06-18 21: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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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 소송 신경쓰지 않고
실험 전념했다면 더 성공 가능성
법의 문턱 높은 중소·벤처 기업
육성안에 법률 지원 포함되기를
라이트 형제의 형 윌버와 동생 오빌은 둘 다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 않아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졸’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소도시에서 자전거 수리소를 운영하며 비행기 발명의 꿈을 키운 형제는 1903년 12월17일 드디어 실험에 성공한다. 그날 ‘플라이어’라고 명명한 인류 최초의 동력추진 비행기가 57초가량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형제가 신문사로 보낸 보도자료를 본 기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겨우 57초라고요? 57분이었다면 뉴스거리가 되었을 텐데요.”

퓰리처상을 탄 작가 데이비드 매컬로의 라이트 형제 전기를 보면 그들이 발명가 못지않게 사업가로서 수완도 남달랐음을 알게 된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보도자료를 미리 준비한 것, 지인에게 부탁해 첫 비행 전 과정을 사진으로 찍은 것 등이 대표적이다. 실험을 끝내고 가장 먼저 한 일도 ‘라이트 비행기계’란 이름의 특허 출원이었다. 미국 정부는 1906년 이 역사적 특허를 승인했고, 형제는 비행기 엔진을 만들어 파는 일종의 벤처기업을 세웠다.

책에 따르면 뛰어난 기술자이자 조종사였던 형 윌버는 1910년 이후 비행기를 몰지 못했다. 법적 다툼에 워낙 많은 시간을 빼앗긴 탓이다. ‘내가 만든 비행기가 먼저 날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미국은 물론 대서양 건너 유럽에도 나타났다. 총 9건의 특허침해 소송 중 6건은 라이트 형제가 원고, 3건은 피고였다. 1911년 지인한테 보낸 편지에서 윌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간을 실험에 바칠 수만 있었어도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을지 생각하면 매우 서글프다네.”

마땅한 대리인이 없어 윌버는 직접 법적 문제를 다루느라 뉴욕, 워싱턴DC, 프랑스 파리 등을 수시로 오갔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그는 45세이던 1912년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저자는 그의 이른 죽음을 ‘소송 대응에 따른 과로’ 탓으로 돌린다.

형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은 동생 오빌에게 넘어갔다. 최종 승리까지는 10년도 훨씬 넘게 걸렸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이사회는 1928년에야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로 인간을 실어나른 첫 동력추진 비행 성공의 공로는 라이트 형제에게 있다’고 의결한다.

비록 한 세기 전의 일이나 과학기술과 경제 분야의 혁신에서 법적 뒷받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운다. 형제는 비행실험 성공을 영상증거로 남기고 실험 종료와 동시에 언론 보도, 특허 출원 등 나름 치밀한 대응을 했음에도 송사를 피하지 못했다. 사업가적 기질이 없거나 부족했다면 누군가 업적을 가로챘을지 모른다. 윌버의 탄식처럼 형제가 소송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실험에만 전념했다면 더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모든 사업은 좋은 아이템이 핵심이나 그게 곧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자본력과 경험도 필수다. 경쟁자에게 당하는 소송 같은 법률적 리스크 해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의 법률자문을 맡은 한 변호사는 “재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분쟁은 예방이 중요하다”며 “자본과 경험이 부족한 벤처기업은 분쟁 예방이 큰 이슈”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에게 법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법무부 주최로 열린 중소·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한 벤처기업인은 “우린 음악 창작과 가수 발굴이 주업이라 저작권법이 중요한데 늘 법률지원이 아쉽다”고 말했다. 요즘 유망한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뛰어든 어느 중소기업인은 “20년간 사업을 하며 외로운 순간이 많았다”며 “법적 다툼이 생겼을 때가 대표적”이라고 털어놨다.

문재인정부가 기존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았다. 중소·벤처기업 육성안에 법률지원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간 법무부가 시행해 온 ‘중소기업 법률자문단’이나 ‘1벤처 1자문변호사’ 같은 제도들의 보완과 확대는 물론 이들을 참고한 새로운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변호사들도 중소·벤처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법적 뒷받침 없는 혁신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부조리를 낳아 혁신의 동력 자체를 잠식할 수 있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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