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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 떠오른다

펴질까?

서쪽하늘이 불붙어 타오른다

펴질까?

한 번도 쫘아악 펴지지 못한 어깨선이

쭈글쭈글하다

얼음으로 불이 된 마음 아니고서는

펴지 못할

이 구겨짐

반은 닳은 외할머니 은가락지만한 한옥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이 시 ‘구겨지다’를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나 눈물이 핑 돌았다. 아흔네 살인 나의 엄마는 부평에 사시는데 찾아뵐 때마다 나는 엄마를 꼭 껴안는다. 엄마를 안을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몸. 


박미산 시인
이 시는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그려져 있는 시이다. 이 짧은 12행의 시에 한 사람의 시간이 다 담겨있다니. 시간은 매일 ‘나’의 일생을 구겨놓고 지나간다. 내 인생의 아침인 젊은 날엔 어깨를 쫙 펴고 찬란한 생을 기다렸지만, 생이 펴지기는커녕 늘 구겨졌다. ‘나’는 인생의 황혼인 노을 녘이 되어 비로소 ‘쫘아악’ 어깨가 펴질 것을 기대했는데 내 어깨는 여전히 펴지지 않고 쭈글쭈글한 시간만 맞이하게 되었다.

외할머니 은가락지만 하게 반이 닳은 ‘나’가 ‘반은 닳은 외할머니 은가락지만 한 한옥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서쪽 하늘이 불붙어 타오른다. 노후의 나직한 귀향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과 엄마가 겹쳐진다.

얼음으로도 불로도 펴지 못한 이 구겨짐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이 시인을 보게 되면 우리 엄마를 안아드리듯이 꼬옥 안아드려야겠다. 은가락지가 차츰차츰 닳아 작아지듯이 아주 작아진 엄마 같은 그녀를.

박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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