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런던 아파트 화재 참사…"700만원 아끼려다 빚어진 참사"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7-06-17 10:05:06 수정 : 2017-06-18 09:35: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그렌펠타워 참사의 교훈
“사망자 숫자가 세자리가 안 되길 빌뿐입니다.”

영국 런던경찰청 스튜어트 쿤디 국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사망자가 17명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6명의 신원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4일 새벽에 발생한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체 120가구 600명가량이 사는 24층 아파트에서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된 사람은 6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재당시 깨어있는 주민이 많아 스스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사례가 많기를 기원할 뿐이다.

소방관들이 신고 접수 6분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인근 지역 주민 대피를 책임질 경찰은 그로부터 16분 뒤에야 협조요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 언제 도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민자 등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아파트라서인지 지난해 리모델링을 거치며 대피 및 소방 장비도 갖춰지지 않았다. 각층에서 스프링클러만 작동했어도 윗층으로 치솟는 불길을 아랫층에서 따라가며 불을 끄는 어이없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방관들이 24층에 도달한 것은 현장에 도착한 지 9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상층부로 올라갈 수록 피해가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14일(현지시간) 새벽 영국 런던에 있는 27층짜리 아파트 건물 `그렌펠 타워`의 2층에서 시작된 불이 삽시간에 건물 꼭대기까지 번진 뒤 건물 전체에서 불길과 검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값싼 외벽 외장재가 불쏘시개가 되고, 외장재와 벽 사이 공간이 불길을 열어준 것인지 등 순식간에 24층 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원인도 찾아야 한다. 영국 국민이 ‘인재’라고 분개하는 배경은 수도 없이 많다.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너무 훼손돼 유전자 검사나 치열 검사로도 신원 확인이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소방당국은 건물 붕괴 등을 우려해 수색견을 투입해 사망자 흔적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참사의 원인을 찾는데 사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 이후 며칠동안 외신과 런던 소방당국·경찰 등이 발표한 내용들을 토대로 이번 참사가 빚어진 원인과 배경을 살펴봤다.

영국 경찰 소속 과학수사대원들이 14일(현지시간)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로 숨진 거주민의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컨트롤타워의 부재...“소방차 현장도착 16분 뒤 경찰에 통보”

런던 아파트 화재를 접한 국내 네티즌은 ‘소방관들이 첫 신고를 받은지 6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는 부분을 높이 샀다.

실제 런던소방국(LFB)은 14일 보도자료에서 “이날 0시54분 첫 999 신고가 접수됐고, 6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런던경찰은 이날 1시16분에 소방당국 등으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첫 신고접수 때로부터 22분이 지난 상황이고, 현장에 소방차가 도착한 시점에서 16분이 지나서야 경찰에 연락이 갔다는 얘기다. 경찰은 현장에 언제 도착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소방당국과 경찰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는 것 외에도 주변의 주민 대피가 필수라는 점에서 자칫 피해를 더 키울 수도 있다. 실제 소방당국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불길이 윗층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건물 구조 전문가를 투입해 붕괴 가능성 여부를 타진한 뒤에야 화재진압에 본격 나섰다. 이후 당국은 인근 건물 30곳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피해 상황 브리핑에서도 나타난다. 런던구급청(LAS)은 환자 68명을 6개 병원에 후송하고 10명의 환자는 직접 병원을 찾았다고 밝혔고, 런던경찰은 74명의 환자가 6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20명은 위독하다고 전했다. 발표 시간차가 있을 수 있지만 여러 기관들을 아우르는 역할이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혼돈일 수 있다.

추모의 문구를 남기는 시민들. AP=연합뉴스
◆어디에도 없는 비상 대피 장비...“밧줄 만들려고 침대보를 엮다니...”

3∼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윗층으로 빠르게 번지는 상황에서 윗층 주민들은 창문을 통해 대피하려고 침대보로 줄을 만들고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실제 외신 사진 중에는 침대보로 보이는 흰 천을 들고 창문 앞에 서있는 시민들이 확인된다. 한 여성은 대피할 방도가 없자 아이를 9∼10층에서 떨어뜨리고, 아래에 있던 남성이 아이를 안전하게 받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렌펠 타워에는 화재시 대피할 장소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갈 대피로도 마땅치 않다. 국내의 경우 고층 아파트는 각 층마다 대피장소를 마련하도록 돼 있다. 아파트 층마다 있는 외부로 트인 1평 남짓한 베란다가 화재 등 유사시 사용될 대피장소다. 밧줄 등 화재 대비책이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적인 방화장비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층마다 있어야할 스프링클러가 없다보니 화재 진압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 최소한 불길이 상층부로 확산하는 속도를 늦춰, 대피 시간을 확보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입로가 좁은 계단 하나뿐인데다,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화염과 연기가 가득차있어서 구조와 진화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화재 발생시 비상벨도 울리지 않았다. 총 120가구가 있었고 상층으로 급속도로 불길이 확산하는 상황이라서, 상위층 주민 중에는 연기와 화염이 덮친 후에야 화재 사실을 인지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실제 24층에서 3살과 5살 아이들과 사는 라니아 이브라햄(30·여)은 화재당시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건물에 갇혀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고, 얼마 뒤 친구에게 아랍어로 “나를 용서해줘. 안녕”이라는 문자를 보낸 뒤 지금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상위층 3개층 주민들 상당수가 실종상태로 알려졌다.

◆값싼 외벽 치장재가 불쏘시개 역할?...“순식간에 24층 꼭대기까지 불길 치솟아”

이번 화재 참사를 지켜본 전세계 언론은 24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외벽을 덮은 치장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리모델링이 진행될 때 값싼 자재가 쓰였는데, 이게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화재 영상을 보면 외벽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치솟는 게 확인된다. 일부 외벽에 불이 붙은채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는 장면도 숱하게 목격됐다.

외벽 치장재에 불이 너무 쉽게 옮겨 붙었고, 치장재와 벽 사이 공간이 불길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불길이 상층으로 확산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창문 등을 통한 대피로가 빠른 시간에 차단됐고, 건물 내부 산소가 급격히 줄어들고 연기가 확산하면서 화염이 내부 공간에 도달하기 전에 질식하는 경우가 많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다 창문 등을 통한 대피로가 없는 탓에 좁은 계단을 통해 대피와 화재 진압이 동시에 진행되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졌다. 소방관들이 24층에 도달한 것은 최초 신고가 접수된 지 거의 9시간만이었다.
데일리메일은 지난해 그렌펠 타워 리모델링 당시 5000파운드(약 725만원)만 더 투자했다면 불연성의 외부 치장재를 사용,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16일 지적했다. 700만원 가량을 아끼려다가 엄청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 아파트에는 구체적으로 1㎡당 22파운드(약 3만2000원)인 플라스틱 자재가 사용됐는데, 이는 미국에서 외벽 치장재로 금지된 제품이라고 지적했다. 1㎡당 24파운드인 불연성 치장재를 사용했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고 신문은 강조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사진=AP, EPA 연합뉴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