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도는 하늘의 소리 아닌 내 안의 음성을 듣는 것”

입력 : 2017-06-15 21:10:00 수정 : 2017-06-15 20:54:3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재무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기도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재무(59∙사진) 시인은 열한 번째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천년의시작)에서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다. 하늘을 향해 비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시인의 기도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는 짐짓 빗소리를 빌려서 운다.

“비 오는 밤 창문을 열어놓고// 손 뻗어 빗소리를 만져봅니다// 가만히 소리의 결을 하나둘 헤아려봅니다// 소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소리 속에 집 한 채를 지을까 궁리합니다// 기실 빗소리는 땅이 비를 빌려 우는 소리입니다”(‘비 울음’)

빗소리, 그 “소리의 줄기들을 세워 움막 한 채 짓는다”면서도 하필 우는 소리를 듣는가. 빗물이 엉켜 만들어내는 흙탕물을 보면서 “저토록 격렬한 포옹을 본 적이 없다”고 쓰는 대목에 그 회한이 보인다. 그는 어제를 뒤적이며 ‘오늘을 울고 있는 사람’인 게다.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햇살이 이파리를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달빛이 강물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지난 사랑을 몰래 뒤적이기도 한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뒤적이다’)

‘망각에 익숙해진 나이’에 지난 세월을 뒤적이다보니 어떤 사연과 사람은 더 돌올하게 심장에 깊숙이 박힌다. 뒤적인다는 것은 너를 깊이 새긴다는 것이라니, 이 언설에 토를 달 사람이 뉘 있으랴. 빛나는 아포리즘이다. 시인은 내친김에 ‘나’를 엎지르고 시간도 엎지른다.

“살구꽃 흐드러진 봄날/ 네게 엎지른 감정,/ 울음이 붉게 타는 늦가을/ 나를 엎지른 부끄럼/ 시간을 엎지르며 나는 살아왔네/ 물에 젖었다 마른 갱지처럼/ 부어오른 생활의 얼룩들”(‘엎지르다’)

저녁을 먹다 엎지른 국그릇에서 튀어오른 얼룩에서조차 ‘너’에게 엎질렀던 감정을 떠올리는 시인은 천생 슬픈 존재다. 무너지는 슬픔을 어깨로 버티며 산다.

“눈물은 때로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슬픔은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너무 큰 슬픔은 울지 않는다. 눈물은 눈과 입으로 울지만 슬픔은 어깨로 운다. 어깨는 슬픔의 제방. 슬픔으로 어깨가 무너지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너무 큰 슬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