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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공익제보] '잃어버린 1년'… 공익제보자를 외면하는 나라

입력 : 2017-06-13 20:48:10 수정 : 2017-06-13 2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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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보, 당국 무성의에 미궁 빠져… 협박 시달리다 도피도”
“아파트 난방유에 값싼 선박용 면세유인 해상벙커C유를 섞어 수백억원어치를 팔아온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주민들은 이 때문에 수년간 매연과 악취에 시달렸습니다.”

2017년 2월6일 부산지방경찰청 브리핑룸. 2년간 아스콘공장 40여곳과 일대 주공아파트 5000여 가구에 250여억원어치의 해상벙커C유를 불법 유통한 사건이 발표됐다.

해상벙커C유는 대형선박에서 사용 후 남은 해상용 중유로, 일반 벙커C유에 비해 황이 13배나 많이 포함돼 있다. 대기오염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에 육상에선 판매·유통이 금지된 기름이다.

사건은 국민 안전과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거액의 부당이익과 탈세가 동반됐다는 점에서 지역 신문과 방송 등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이는 지난해 8월26일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에 접수된 고발에 따른 수사 결과였지만, 관련 공익제보는 이미 고발 1년여 전 다른 정부기관을 통해 이뤄졌다. 즉 정부 내에서 최소 1년여를 허송한 것이다. 하지만 첫 제보가 이뤄진 뒤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기까지 1년은 진실이 알려지지 못한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제보자에겐 살해협박까지 받던 고통의 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상벙커C유 불법유통 사실을 공익제보한 신인술씨가 지난달 8일 경남 양산의 한 카페에서 취재팀에게 ‘제보 이후 잃어버린 1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8일 경남 양산시를 찾아 사건을 고발하고 각종 증거까지 제시했던 공익제보자 신인술(57)씨를 만나 원통하고 안타까운 1년의 사연을 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신씨가 12∼13년간 탱크로리 기사로 일한 뒤 경남 창녕군에 공장이 있는 D에너지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2015년 1월26일.

그는 입사 2개월 후 자신이 전국에 운반하는 기름이 육상에서 유통이 금지된 해상벙커C유라는 걸 알게 됐다. 해상벙커C유를 정품에 섞거나 전표를 위조해 정품인 것처럼 속여 유통했던 것이다.

신씨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거래처 가운데 서민들이 모여 사는 주공아파트 단지가 섞여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기름을 유통한 주공아파트들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신씨는 8월4일 회사에 사표를 냈고 다음날인 8월5일 ‘가짜 전표’를 만들라고 지시한 파일과 거래처 출입고 내역 등 7개월간 모은 자료를 토대로 부산지방국세청에 신고했다. 면세유를 불법유통했으니 탈세 혐의가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부산국세청은 1개월 뒤 신씨의 제보가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회사가 위치한 동울산세무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동울산세무서는 1개월가량 조사한 뒤 10월 초 신씨와 함께 울산지방검찰청에도 사건을 알렸다.

신씨는 11월부터 12월까지 울산지검 512호실에서 4차례나 조사를 받으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국세청이나 검찰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2016년 1월. 사건이 궁금했던 신씨는 검찰청에 문의 전화를 걸었다가 “사건 자체가 접수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울산지검 512호실에선 ‘검사도 바뀌고 고발된 사건이 접수된 적도 없다’고 대답하더라”고 황당해했다.

신씨는 동울산세무서 조사과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했지만 동울산세무서 측으로부터 “검찰에 고발한 게 아니라 수사요청만 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사건이 부산 국세청-동울산세무서-울산지검을 오가는 사이에서 미궁에 빠진 것이다.

그 사이 5월 말. 회사 관계자들이 어떻게 알고서 신씨에게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고, 집으로 찾아왔다. 당국 어디에선가 신분이 노출된 것이다. 특히 회사 사장은 6월 초 살해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씨는 “사장 이씨가 전화해 가족들 이름 하나하나까지 들먹이면서 협박을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신씨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10월까지 5개월간 집을 나와 도피생활을 했다. 강원도 정선군 등을 전전하며 배추밭 일이나 대리운전을 했다.

신씨는 그 사이 동울산세무서로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를 마쳤다’면서 ‘증거 부족’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동울산세무서 측은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신씨는 이후 국회와 청와대 국민신문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과 제보를 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청와대는 권익위에 문의하라고 했고, 권익위 측은 “권익위에 신고해도 어차피 울산지검으로 이첩된다”고만 답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결국 신씨는 2016년 8월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에 고발장을 냈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우려해 신씨의 고발을 취하시킨 뒤 인지사건으로 전환해 수사에 착수,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다.

신씨는 이 과정에서 오직 진실을 밝히자는 일념으로 창녕군부터 부산 녹산신항까지 회사 탱크로리를 미행, 차량 번호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경찰에 넘겨주는 등 수사를 적극 돕기도 했다.

신씨는 1년여 허송세월하고 지난 2월 경찰에 의해 진실이 규명된 뒤인 지난 4월에야 뒤늦게 권익위로부터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았고 신변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물차 아르바이트 중이다.

신씨는 “우린 생명과 가족 안전 등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제보하지만 정부 당국과 공무원들은 정의와 우리의 고통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원망했다. 그러면서 “시민이 모든 것을 다 밝혀야 하느냐. 공무원들의 직무유기가 얼마나 사회의 악인지 알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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