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가 빚어낸 풍경이다. 이미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들어갔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남긴 파편들은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 구호가 각자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의 별빛을 잃고 저마다 내면의 불꽃을 지닌 채 살아가는 시대 아닌가.
청와대에 좀 더 가까이 가서 목소리를 높이려는 걸 탓할 일이 아니다. 정권 핵심인사들이 너나없이 촛불민심 받들기를 약속하지 않았는가. 정권 인수를 책임진 이는 촛불민심을 받들라고 공직사회를 다잡았고, 정부를 이끄는 인사는 아예 공무원을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고 규정했다. 고무된 듯 각종 단체에서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정책 제언을 넘어 빚독촉에 가까운 내용도 많다.
지선 스님의 용마(龍馬) 이야기가 화제다. 용마는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가진 상상 속 동물로, 중국 역사에서는 3황5제 중 한 명인 복희가 용마의 무늬를 보고 8괘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지선 스님은 그제 6·10항쟁 기념식에서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용마가 나타났는데 온 고을의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몰려와 모두 한 번씩 올라타 보는 바람에 용마가 지쳐 쓰러졌다”는 우화를 소개했다. 현명한 국민이 성공한 정부를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리 쉽게 일깨워주는 설명이 또 있을까. 용마를 마구 부려 지쳐 쓰러지게 할지, 창공으로 힘차게 비상하게 할지 결국 국민에 달린 셈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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