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정부가 직접 영화를 제작하던 시절

입력 : 2017-06-10 14:00:00 수정 : 2017-06-09 17:28: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란 말이 다시 들려오는 요즘이다.

지난 몇 년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실제 위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지원을 받으려면 간섭도 받아라!” 혹은 “지원은 안 해도 간섭은 한다!!” 식의 말이 더 통하는 시절을 보냈던 건가 싶다.

오늘은 정부가 특정 영화나 영화인을 대상으로 지원을 근거로 간섭하거나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뛰어 넘어, 아예 직접 정부의 의도대로 영화를 제작했던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나라 정부가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뉴스영화, 문화영화, 홍보영화 등의 제작을 시작한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시기부터였다. 이전에 조선총독부, 미군정이 했던 일들이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셈이었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공보부(처) 산하 영화과(1948~1961), 국립영화제작소(1961~1994)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 한국정책방송원으로 이름이 바뀐 기관에서는 영화관에서 본편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상영되었던 ‘애국가 영화’, ‘대한뉴스’, ‘문화영화’ 등을 제작했다.

국립영화제작소에서는 편극영화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팔도강산’(감독 배석인, 1967)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근대화되었는지 전국 방방곡곡을 보여주기 위해 노부부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을 방문하는 스토리를 담은 영화였다.

‘팔도강산’의 흥행에 힘입어, 다음해 ‘속 팔도강산-세계를 간다’(감독 양종해, 1968)도 제작되었는데, 전편에 이어 노부부가 미국, 브라질, 서독 등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을 방문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10여 개국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부 기관에 제작한 정부 정책 홍보용 장편극영화였다.

1973년에는 ‘유신영화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4차 개정 영화법에 의해 한국 영화 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영화진흥공사’(이후 영진공)가 설립되었다. 영진공은 한국 영화계를 대상으로 지원 정책을 집행하는 기구인 동시에 한국 영화계를 관리 혹은 규제하는 기구였는데, 설립 직후에는 개봉용 장편극영화를 제작했다.

'증언'(감독 임권택, 1973), '들국화는 피었는데'(감독 이만희, 1974), '아내들의 행진'(감독 임권택, 1974), '울지 않으리'(감독 임권택, 1974), '태백산맥'(감독 권영순, 1975), '잔류첩자'(감독 김시현, 1975) 등이 바로 당시 영진공이 제작한 영화들로, 소위 ‘반공영화’나 ‘새마을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영화 중 반공영화나 새마을영화 등 ‘유신 정신’ 및 정부 정책을 담은 영화들 중 ‘우수영화’를 선정해 포상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아예 직접 제작에 나섰던 것이다.

한편 영진공은 1999년 민간자율기구인 ‘영화진흥위원회’(이후 영진위)로 전환되어 현재는 제작, 유통, 투자/출자 사업, 영화제, 학술 등의 부문 지원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민간기구로 전환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진위 위원장을 임명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운영되다보니, 이번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각종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정부의 간섭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영진위 위원장 임명권을 민간위원들에게 위임하겠다는 새 정부의 계획도 들려오고 있다.

사실 정부의 영화에 대한 간섭은 역사도 길고, 방법도 다양했다. 영화제작사 허가, 외화 수입 허가, 시나리오 검열을 통한 영화 제작 허가, 완성영화 검열을 통한 영화 상영 허가, 극장의 입장료 허가 등 각종 허가제도 등 그 시절 정부의 간섭 즉 규제는 한국영화 산업을 기업화하고, 우리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시행되었다.

지원을 주고받는 관계가 치사한 ‘갑을관계’로 변질되는 일은 이제 더는 발생하지 않기 바란다. 국민이 낸 세금과 영화관객이 입장료 구입을 통해 낸 영화발전기금을 재원으로 행해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부가 정책을 홍보하는 장편극영화를 직접 제작해 단체관람을 유도하는 시절도 아닌데, 자꾸 그 시절로 소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