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문학과 더불어 살아온 작가 황석영. 그는 “문학은 내 집이었고 떠나 있을 때도 언제나 잊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문학입니다. 결정적일 때마다 문학이라는 목표와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싶습니다. 베트남에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좋은 글을 쓰겠다고. 오랜 망명과 감옥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소설을 못 쓸 것이라고 걱정할 때도 노름꾼이 새벽 끗발을 기다리듯 오히려 평온했지요. 캄캄한 밤에도 먼 데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나를 끌고 온 문학은 나의 인생이었고 내 집이었습니다.”
이 자전은 방북 이후 투옥된 5년의 수감 생활을 현재형의 한 축으로 삼고 또 한편에서는 감옥 바깥 삶의 중요한 고비들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내는 방식이다. 그는 진정한 자유가 도래하지 않은 한반도에서 살아왔다는 맥락에서 감옥 안이나 바깥이나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인 ‘수인’이었다는 시각이다.
황석영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자전(自傳) `수인`의 출간 기념 간담회를 열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소설가란 모름지기 작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을 쓸 거라곤 상상하지 못하다가 연재 권유에 집필을 시작했지만 중도에 그만두었고, 3년 전에서야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해 출간했다. 6000매까지 썼다가 4000매로 축약했는데 기실 그동안 삶의 5분의 1 정도밖에 담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 써놓고 보니 옆을 돌아보지 않고 한길로 화살처럼 달려오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 달도 평온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번 일이 터지고 거기에 대응해온 인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자신도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주변에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겁니다.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그동안 내 귀중한 벗이나 선후배들에게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성찰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면 1985년 광주에서 집을 떠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파가’(破家)의 사주를 바꾸고 싶습니다.”
그는 “4·19와 5·16을 겪었던 고등학생 소년이 탄핵을 겪는 과정까지, 돌아보니 대장부 한평생이 걸렸다”면서 “19세 소년에서 75세까지 한국 현대사는 평탄치 않았고 지금도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 미래는 미지의 것으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장부 한평생’을 돌아본 그는 “어쨌든 우리는 촛불 이후 새로운 출입구에 서 있다”면서 “글쓰기를 혹독하게 말렸던 어머니에게 이 자전을 바친다”고 맺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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