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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길 사이에 낀 인간 방황 묘사… 모호한 관념들이 사회 발전 저해”

입력 : 2017-06-08 20:57:45 수정 : 2017-06-08 2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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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남한산성’ 100쇄 돌파 아트에디션 출간
김훈(69·사진) 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이 10년 만에 100쇄를 달성한 기념으로 ‘아트 에디션’판으로 나왔다. 문봉선(홍익대 미대 교수·56) 화백의 그림 27점을 넣어 기존 판형보다 크게 편집했다. 말미에는 ‘못다 한 말’ 50쪽 분량을 새로 추가했다. 김훈은 100쇄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남한산성’은 말과 길 사이에 낀 인간의 방황을 그린 것일 뿐 결론이 없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에서 역사 담론을 만들어내거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시대와 말과 관념과 인간의 야만성, 이런 것들 속에서 인간 삶이 빚어내는 풍경을 묘사하려는 게 목적이었죠. 요약하자면 말과 길에 대한 글입니다.”

따로 교감을 하지 않았는데도 문봉선은 표지화로 뽑힌 그림에서 길에 대해 묘사했다. 문 화백은 “소설이 펼치는 역사의 무거움을 마음에 새겨 여러 차례 현장 답사를 통해 사실적 접근에 힘썼다”면서 “혹독한 겨울 가파른 산성의 모진 악조건 속에서 옥죄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김훈은 “100쇄라는 의미보다 지난 10년 동안 독자들이 읽어주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감사한다”면서 “이 소설을 쓸 당시의 고뇌와 작금의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고통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나를 괴롭혔던 건 언어와 관념이었는데 지금도 조선시대 못지않은 관념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같은 건 썩어빠진 질문입니다.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강한 무력을 가진 군사적 실체이고 주민들을 장악한 정치적 실체입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대하는 것 같은 몽롱하고 무지한 관념에 빠진 질문입니다.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 같은 논쟁도 마찬가지죠. 한국 현대사를 바꾼 거대한 정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모호한 관념들이 우리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걸려 있습니다.”

그는 “영광과 자존만이 인간의 역사를 구성할 수 없고 치욕과 모멸 또한 역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면서 “조선시대의 사대는 약자가 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이었다는 사실을 교과서에서도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연히 같은 열차를 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였던 최명길에게 더 마음이 간다고 했다는 ‘못다 한 말’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이상을 간직하는 것은 좋지만 현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아트 에디션은 한정판으로 문봉선 화백의 그림 영인본 3점을 함께 제공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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