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조용호의 나마스테!] “中 현대사가 나를 선택… 소설 ‘형제’의 탄생은 운명”

입력 : 2017-06-05 20:46:18 수정 : 2017-06-06 02:43:1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중국 3세대 문학 대표작가 위화 국내 독자들에게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원작자요 ‘허삼관매혈기’ 작가로 더 친근한 중국 3세대 문학 대표작가 위화(余華·57)를 만났다. 지난달 말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만난 것인데 그는 한국을 자주 찾는 편이다. 지금은 글로벌 작가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를 국외에서 먼저 발견하고 환대한 나라가 한국과 프랑스였다니 이해할 만하다. 그는 최근 자신이 대표작으로 내세우는 ‘형제’(전2권·푸른숲)를 국내에 다시 선보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기간과 그 이후의 급격한 중국 사회의 변화를 비애와 해학을 넘나들며 탁월하게 묘사해 현대 중국의 바탕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중국 사회의 변화가 가장 큰 시기에 썼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 전이나 후에 썼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작가가 제대로 작품을 쓰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거지요. 어떤 작품도 ‘형제’ 같은 서술방식으로 문화대혁명과 현대 중국 사회를 묘사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인생’이나 ‘허삼관매혈기’ 같은 형태의 소설은 또 쓸 수 있겠지만 ‘형제’ 같은 작품은 다시 쓸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취사해서 썼다기보다 중국 현대사가 나를 선택한 것 같아요.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잘 안 써지는 경우는 재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쓸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힌 중국 소설가 위화.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동북아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북한 미사일이 중국을 향해 날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중국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1996년 집필을 시작했지만 잘 써지지 않다가 2003년 무렵부터 순조롭게 ‘형제’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문혁’이 끝나고 중국 사회가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면서 1991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이 변화가 가장 큰 시기였던 만큼 ‘형제’의 탄생 시점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조국 콜롬비아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도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노작”이라고 덧붙였다.

6살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을 16살까지 겪었으니 “성장기에 제대로 된 문학작품을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고 교과서에서도 루쉰이나 마오쩌둥 정도의 글밖에 접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그 시기의 고통과 참상을 증언하는 이른바 ‘상흔(傷痕)문학’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당국에서도 장려한 그 문학은 위화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했던 모양이다.

그는 “나를 결정적으로 소설 쓰기로 인도한 작품은 1980년, 스무살에 접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였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내려간 청년과 10대의 어린 소녀 무희와의 순정한 감정이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전개되는 애잔한 소설이다. 위화는 “폭력으로 인한 상처만이 상흔문학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직접적이고 특별한 원인이 있지 않더라도 이것도 상흔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면서 “이 작품을 보고 비로소 나도 한 번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낮에는 이를 뽑는 치과의사였고 밤에는 소설을 쓰는 습작생으로 살던 그는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같은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첫 장편 ‘가랑비 속의 외침’ 이후 두 번째 장편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져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허삼관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찬사를 받았고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요즘 중국에서는 내 소설을 할아버지 부모 자녀 세대가 함께 읽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3세대가 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소설 속 인물의 운명은 사회와 역사에 긴밀하게 연결지워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서 그것을 피해가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와 역사 관련된 내용을 쓰고 싶지 않아도 한 인물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쓰지 않으면 소설에서 현실성이 사라지고 맙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은 시점만 밝히면 누구나 그 시대 배경을 알지만 1980년대 같은 경우는 특별한 상징을 내세워야 시대가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예컨대 그 시대는 ‘양복’이 특징이었지요. 1990년대는 텔레비전 채널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그 모든 채널에서 방영한 ‘미인선발대회’가 특징으로 변하듯 말입니다. 인물의 운명은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 소설에서 창작의 형식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 때문일 겁니다.”


위화도 슬쩍 언급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형제’에서도 엉뚱한 해학이 자주 슬프게 구사된다. 그 해학이 비극 속에서도 돋보이는 건 위화 소설의 매력이다. 그는 “비극이 너무 계속되면 나 자신이 쓰기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면서 “만약 웃기는 이야기만 계속 나오는 소설을 보게 된다면 그건 내가 너무 힘든 상태라고 짐작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중국은 돈을 숭배하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당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를 짓는 것은 탄압하고 있어요. 공산당이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한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신앙이라는 건 찾아보기 어렵죠. 자연히 금전을 좇을 수밖에 없지요. 신앙만이 해결책인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으니까 더 급속도로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 나온 ‘인생’이 중국에서 갈수록 더 많이 읽히는데 작년에 130만부가 팔렸고 올 초 3개월 동안에만 50만부를 찍었다고 했다. 사인회를 가면 해적판을 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는 그의 말을 감안하면 폭증하는 그의 인기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올 9월에는 출간 사인회를 겸해 러시아 그리스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 4개국을 돌아야 한다는 그에게 이제 ‘부자’라고 치켜세웠더니 “생활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이런 게 오히려 작품 집필에는 더 문제인 것 같다”고 웃었다.

100년 전 이야기를 담은 한 편과 당대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을 포함해 3편을 집필하려다 밀쳐둔 상태라는 그는 “빨리 그 원고들에 인공호흡을 해줘야 한다”며 “몇 년 동안 책을 못 냈는데 한꺼번에 3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호언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것은 글 쓰는 리듬을 물었을 때 여느 작가들처럼 규칙적으로 쓰고 운동하고 독서한다는 대답이 아니라, 몇 달 동안 쓰지 않다가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터였다.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힌 중국인 특유의 뚝심이 새삼스러웠다. 동석했던 이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는 말을 청했을 때, 그는 나이부터 물었다.

“청년이라면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용기를 내면 됩니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운명에 순응해야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