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의 변화가 가장 큰 시기에 썼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 전이나 후에 썼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작가가 제대로 작품을 쓰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거지요. 어떤 작품도 ‘형제’ 같은 서술방식으로 문화대혁명과 현대 중국 사회를 묘사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인생’이나 ‘허삼관매혈기’ 같은 형태의 소설은 또 쓸 수 있겠지만 ‘형제’ 같은 작품은 다시 쓸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취사해서 썼다기보다 중국 현대사가 나를 선택한 것 같아요.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잘 안 써지는 경우는 재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쓸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힌 중국 소설가 위화.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동북아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북한 미사일이 중국을 향해 날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중국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
6살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을 16살까지 겪었으니 “성장기에 제대로 된 문학작품을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고 교과서에서도 루쉰이나 마오쩌둥 정도의 글밖에 접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그 시기의 고통과 참상을 증언하는 이른바 ‘상흔(傷痕)문학’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당국에서도 장려한 그 문학은 위화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했던 모양이다.
그는 “나를 결정적으로 소설 쓰기로 인도한 작품은 1980년, 스무살에 접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였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내려간 청년과 10대의 어린 소녀 무희와의 순정한 감정이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전개되는 애잔한 소설이다. 위화는 “폭력으로 인한 상처만이 상흔문학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직접적이고 특별한 원인이 있지 않더라도 이것도 상흔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면서 “이 작품을 보고 비로소 나도 한 번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소설 속 인물의 운명은 사회와 역사에 긴밀하게 연결지워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서 그것을 피해가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와 역사 관련된 내용을 쓰고 싶지 않아도 한 인물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쓰지 않으면 소설에서 현실성이 사라지고 맙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은 시점만 밝히면 누구나 그 시대 배경을 알지만 1980년대 같은 경우는 특별한 상징을 내세워야 시대가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예컨대 그 시대는 ‘양복’이 특징이었지요. 1990년대는 텔레비전 채널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그 모든 채널에서 방영한 ‘미인선발대회’가 특징으로 변하듯 말입니다. 인물의 운명은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 소설에서 창작의 형식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 때문일 겁니다.”
“지금 중국은 돈을 숭배하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당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를 짓는 것은 탄압하고 있어요. 공산당이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한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신앙이라는 건 찾아보기 어렵죠. 자연히 금전을 좇을 수밖에 없지요. 신앙만이 해결책인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으니까 더 급속도로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 나온 ‘인생’이 중국에서 갈수록 더 많이 읽히는데 작년에 130만부가 팔렸고 올 초 3개월 동안에만 50만부를 찍었다고 했다. 사인회를 가면 해적판을 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는 그의 말을 감안하면 폭증하는 그의 인기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올 9월에는 출간 사인회를 겸해 러시아 그리스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 4개국을 돌아야 한다는 그에게 이제 ‘부자’라고 치켜세웠더니 “생활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이런 게 오히려 작품 집필에는 더 문제인 것 같다”고 웃었다.
100년 전 이야기를 담은 한 편과 당대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을 포함해 3편을 집필하려다 밀쳐둔 상태라는 그는 “빨리 그 원고들에 인공호흡을 해줘야 한다”며 “몇 년 동안 책을 못 냈는데 한꺼번에 3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호언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것은 글 쓰는 리듬을 물었을 때 여느 작가들처럼 규칙적으로 쓰고 운동하고 독서한다는 대답이 아니라, 몇 달 동안 쓰지 않다가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터였다.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를 굳힌 중국인 특유의 뚝심이 새삼스러웠다. 동석했던 이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는 말을 청했을 때, 그는 나이부터 물었다.
“청년이라면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용기를 내면 됩니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운명에 순응해야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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