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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SK식 ‘일자리 다리’ 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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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2 00:22:20 수정 : 2017-06-02 00: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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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등 떠미는 식의 고용은 부작용 크고 지속되기 어려워 / 대기업이 벤처 육성 나서도록 분위기 조성하면 효과 클 것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정부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상황판을 걸어놓고 고용을 독려한다. 어제는 ‘일자리 100일 계획’까지 내놨다. 공무원을 증원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대기업에 부담금 부과를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 지도자가 경제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선한 의지의 발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자리는 착한 의지만으론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용 이슈에 너무 집착하면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기업의 생산성이 저하될 위험이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져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질 수 있다. 대기업 등을 떠미는 방식은 부작용이 크고 오래 유지되기도 어렵다. 좋은 목적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려면 그 수단 역시 좋아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좋은 정책이란 무엇일까. 맹자 이루장편을 보면 이런 일화가 등장한다. 중국 정나라에 진수와 유수라는 강이 있었다. 백성들은 항상 바짓가랑이를 걷고 맨발로 강을 건너다녔다. 어느 날 재상인 자산이 그곳을 지나다 백성들의 딱한 모습을 보고 자기 수레에 태워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어진 재상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자자했지만 맹자의 생각은 달랐다. “자산의 행위가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치를 할 줄 모른다”고 혹평했다.

맹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찌 사람들을 일일이 건네주겠는가? 각각의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면 매일매일 정성을 쏟아도 부족하다. 11월에 도강이 만들어지고 12월에 여량이 완성되면 강을 건너는 백성들의 불편은 사라질 것이다.” 도강은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이고, 여량은 수레가 지나갈 수 있는 큰 다리를 일컫는다. 몇몇 사람을 도와주는 선행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방도를 찾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일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정책, 좋은 정치가 되려면 수레로 태워주는 게 아니라 다리를 놓는 방식이어야 한다. 대기업을 압박하거나 기존 일자리를 쪼개 실직자들에게 나눠주기보다는 투자와 창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다리’를 놔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창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창업에 관한 한 정부보다 기업이 한 수 위다. 대기업이 창업 지원에 나서도록 정부는 문만 열어주면 된다.

SK텔레콤의 사례를 눈여겨보라. SK텔레콤은 사회 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청장년들의 벤처 창업을 지원한다. 공모에서 선정되면 업체당 지원금 2000만원을 주고 판로와 마케팅까지 도와준다. 도심 사무실을 공짜로 주고 기술 자문을 해준다. 그간 선정된 46개 업체들은 지난해에만 17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일자리 275개도 만들어졌다.

SK의 일자리 방식은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 창업 생태계를 바꾸는 촉매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청년 구직자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내 창업 환경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창업은 하기도 어렵고 성공할 확률은 바늘구멍보다 좁은 현실이다. 대기업들이 SK처럼 벤처 창업을 지원한다면 청년들이 앞다퉈 창업에 뛰어들면서 한국판 일자리 신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기적을 일구려면 동반성장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이 특정 업종의 가게를 열지 못하도록 골목 상권을 감시하는 소극적 대응에서 대기업이 창업 지원에 나서게 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대기업에 물리는 각종 준조세를 줄여준 뒤 그 재원을 벤처 사업에 쓰도록 한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일자리 다리는 많을수록 좋다. 30대 대기업이 각자 하나씩 다리를 놓는다면 수많은 벤처 업체와 청년들이 그 다리를 건널 것이다. 일자리 정책치고 이만 한 게 없다. 고용 현장에서 ‘도강’과 ‘여량’이 많이 생길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SK 방식을 살펴보길 권한다.

일자리가 황금알이라면 기업은 그것을 낳는 거위다. 아무리 황금알이 급해도 기업의 배를 가를 순 없다. 알에 눈독을 들이기보다 거위 수를 늘리는 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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