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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24) 폭풍이 몰아치기 전

입력 : 2017-05-30 14:58:49 수정 : 2017-05-31 09: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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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아스탐을 찾아가는 산길 어둠에 갇혔다. 불빛이 새는 한 곳에 이르러 길을 물었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낙담하자 청년이 손전등을 들고 나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4,50분은 가야한다는데. 머잖은 곳에 민박이 없는 것도 아니나 이왕 고생한 것 호텔로 가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네팔에서 살아볼까 했지만 다시 곧 떠날 것 같다는 청년. 청년실업문제가 이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친구도 따라 붙었다. 오는 길은 홀로 와야 할 테니. 

닦이고 있는, 그래서 마른 흙먼지 풀풀 일으키는 퍽 너른 길을 따라 길 아래 집들이 보이기도 했고, 두어 무리 사람도 지났다. 별빛을 이고 움직이는 그들의 이웃사촌들은 한밤에 무슨 일이냐를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 소식을 주고받았다.

“다들 서로 잘 아나 봐?”

“이웃이니까.” 

밤 8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네팔의 산에서 호텔이란 로지를 비롯한 게스트하우스며 모든 숙소를 일컫는다. 그런데, 여긴 그야말로 호텔 이름에 걸맞은.

사례비라도 줘야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한국으로 갈 기회가 있을 때 그때 나도 당신한테 연락하겠노라 그가 말했다. 나 역시 달려가마 했지. 그의 이름도 프로가스, 마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를 향하던 젊은 일행들 가운데 한 이름처럼. 우리의 철수쯤인가 보다, 요새는 그 이름도 귀하다만.

이번 여행은 네팔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세. 그들의 활달함과 친절 역시 네팔을 다시 찾고픈 마음을 부추기는. 

그런데, 포카라 인근 리조트라 산에서 묵었던 방값으로는 터무니없다.

“비수기인데, 비어 있는 방도 많은데...”

매니저가 만만찮았지만, 그럭저럭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로 협상을 끝냈다.

저녁을 먹으니, 녹초다. 하루도 쉬운 날이 없다, 이럴 때 나오는 엄살이다. 피탐 데우랄리를 떠나 포타나, 담푸스를 거쳐 아스탐으로 바로 올 길을 단다 쪽으로 잘못 갔다 페디를 거쳐 예기치 않게 버스를 타고 마즈바틱에서 다시 산을 거슬러 올랐고, 그 길마저 빗나가 한밤에야 아스탐에 닿았다.  

가르촉까지 한 이틀 트레킹을 더 하자고 온 길인데 내일은 내일의 계획대로 날이 흐를 것인가... 

<<사진 = 아스탐의 숙소에서 본 안나푸르나 산군>>
<<사진 = 아스탐 마을>
<<사진 = 아스탐의 학교 마당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
<2017년 3월 5일; 트레킹 8일차, 아스탐> 

이른 아침 숙소 2층의 커튼을 젖히자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발을 내밀었다.

숙소를 나섰다. 어제 헤매며 들어섰던 길은 어디인지, 원래는 어디로 왔어야 하는지 살폈다. 산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이 그래도 산을 좀 내려왔다고 간격이 조금씩 벌어져도 있고, 농토도 꽤 널찍하다, 여전히 다랑이 논밭이지만. 2층짜리 건물도 심심찮게 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학교도 기웃거렸다. 짧은 방학이라 닫혀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10시나 시작하는(고개 곳곳에서 아이들이 넘어오기 일쑤이니) 이곳 학교들이라 아이들을 볼 수는 없을 시간. 

마을의 다른 쪽 끝으로 걷다가 영어가 유창한 젊은이를 하나 만났다. ‘안나푸르나 에코빌리지’라는 일종의 리조트에서 일한다 했다. 요가명상센터도 있다고.

“지난번에 네팔 왔을 때 트레킹 마치고 포카라에서 일주일 머물렀는데, 그때 명상센터도 갔어요!”

“그럼 한 번 와볼래요?”

묵으러도 오고 식당도 오고 에코빌리지 시스템을 보러도 오고 요가명상을 위해서도 온다고. 네팔인들도 오지만 타국에서들 더 많이. 한국인이 묵은 적은 없단다.

만 세 돌을 갓 넘긴 아들 손을 붙들고 3년 동안 일곱 개 나라의 공동체(주로 생태공동체)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 공동체를 실험하면서 5~600여개 되는 전 세계 공동체와 대안학교들을 검색하고 몇 곳을 방문했던 그때. 그런데 네팔에서 그런 공간을 만난 거다. 무엇이 그토록 무리하게 이곳으로 발길을 끄는가 싶더니 이것이었던가. 

일 많고 탈 많은 산마을에서 삶을 밀고 가는 힘 가운데는 아침마다 하는 수행 덕이 컸다. 날마다 저축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지 않던가. 몸과 마음을 그렇게 다져 다음을 살았다. 그건 기도의 방식이기도 했다. 작년 제도학교 3년 만에 대학을 가게 된 아이에게 어미로서 도운 게 하나 있다면 아침마다 하는 백배 절이었다. 천산산맥을 넘는 실크로드 40일 여정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던 백배였다. 사람 하나 보내는 일로 황폐해졌던 가슴을 가눌 길 없어 일상은 푸석거렸고, 그리고 떠났던 네팔 행이었다. 이제 좀 수습하라는 말처럼 들린 요가명상센터 소식이기도 했다.

‘에코빌리지’에서는 마을의 학교에 보탤 손발을 모집하고 있기도 하였다. 방문했던 호주의 한 공동체에 있는 학교에서처럼 강강술래를 가르칠 수도 있었으리.

여기 잠시 묵어 봐도 좋겠다.

“그런데 나는 이미 숙소를 정했는데...”

전체 프로그램에서 숙박비만큼을 공제해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욱 망설일 까닭이 없지.  가르촉으로 가는 길을 접기로 한다.

태양광과 음식물쓰레기와 배설물을 이용한 가스를 쓰는 대체에너지 쓰임도 보고, 커피콩 껍질 벗기는 기계도 돌리고, 언덕 바위틈에서 명상도 하고, 책도 읽고 해먹에서 낮잠도 자고, 한 무리의 터키 중년들과 함께 잠시 보내기도 했고, 요가명상센터에서 요가 수업도 했다. 유비 그가 방글라데시 요가대학을 나온 강사였던 것. 

내가 오기 전 터키 사람들을 위해 도코(대나무 바구니)를 만드는 시연이 있었단다.

“나도 보고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직접 만들고 싶다고 하자 재료도 준비해주었다.

노동요를 불러도 좋으리. 도코를 엮는 아저씨랑 렛산 피리리리를 시작으로 같이 흥얼거리다 한국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마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에서 리사이틀을 했던 서정춘의 ‘여행’도 불렀다, 마침 그게 대나무를 묘사한 거라 노래를 하나 하나 뜯어 설명까지 해가며. 아름다운 시는 공유도 빠르다. 유비는 자꾸 채근하며 영상으로 노래를 담기도 하였더라.

바구니를 다 만든 아저씨는 자신이 만든 커다란 바구니를 선물이라며 내민다. 그렇게 받았던 선물을 다 가지고 다녔다면 네팔에서 아주 살림을 차렸을 거다. 여기서 잘 쓰시라 되밀었다. 

<<사진 = 아스탐의 ‘에코빌리지’>>
완성할 즈음 비 빠졌다. 비 빠진다, 남도 바닷가에 가면 사람들은 비 내릴 때 그리 말했다. 그들의 세계에는 바다가 가장 큰 면적일 것이니, 비가 바다에 빠지는 풍경 역시 그만큼 흔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표현도 나왔으리.

어디에 사는가가 언어를 결정한다. 아무렴. 환경과 문화는 분명 언어에도 담기기 마련이라 여행지에서 그곳 사람들이 쓰는 말의 리듬에 귀기울일라치면, 말을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 보다 넓어진다. 네팔 산자락에서 듣는 말에선 구릉처럼 곡이 많고 한 번씩 돌부리처럼 받치는 부분이 있다. 말에 계곡이 있고 돌계단이 있고 울창한 숲이 들어도 있다. 너른 지대로 가면 또 다른 운율일 것. 

그런데, 숙소로 돌아오자 매니저가 단단히 뿔이 나 있다...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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