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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동굴벽 그림자 너머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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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9 21:52:26 수정 : 2017-05-29 21: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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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질 난무하는 패권 전쟁
힘을 기르는 자는 살아남고
배려를 바라는 자는 망한다
문재인정부는 각오 다지길
어두운 터널이었다. 국정농단과 탄핵 늪에 빠져 한 해 가깝도록 이어진 혼란. 레임덕은 어김없이 반복되지만 이번 같은 ‘하얀’ 국정공백은 일찍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하필 이때인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열강의 패권주의. 그 본질은 무엇일까. 상대의 알량한 것마저 빼앗아 자국의 위기를 넘는 자양분으로 삼는 것을 본질로 한다. 군사력을 앞세운 강권 외교, 보호무역주의, 이웃을 재물로 삼는 환율정책…. 어려워진 세계경제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모두 똑같다. 북핵만 골칫거리가 아니다. 중국은 사드 보복에 나서고, 미국은 보호주의 공세에 나섰다. 일본도 패권주의 등에 올라탔다. 패권에 멍든 나라. 우리의 경제·안보는 최악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닻을 올린 문재인정부.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 달라지는 걸까.

그런 것 같지 않다. 패권의 이빨은 여전히 날카롭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 북한은 그렇다 치자. 미·중·일은 어떤가. 우리의 대통령 특사를 하석에 앉힌 시진핑 국가주석, 특사를 대통령 옆에 차렷 자세로 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 장면에는 패권 시대의 달라진 룰이 도장처럼 새겨져 있다. 외교적 결례? 참 딱한 소리다. 두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힘도 없는 ‘반쪽 나라’가 똑같은 반열에 앉고자 하는가.” 패권시대의 질서는 다르다. 정의를 바랄까, 배려를 바랄까. 주먹을 휘두르는 판에 어디에서 정의를 찾고, 누구에게 배려를 바라겠는가. 그러기에 약한 자는 하석에 앉아야 하며, 차렷 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보복은 무디어질까. 대통령 친서를 품고 간 이해찬 특사, “중국도 한·중관계를 중시한다”고 했다. 시 주석에게서 들은 말은 뺐다. 시 주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드는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위협으로 실질적 조치 없이 한·중관계는 어렵다.” 왕이 외교부장 왈, “방울을 매단 사람이 풀라.” 사드 보복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미·중, 중·일 충돌. 조금 누그러졌다. 왜? 표적을 북핵에 모으고 다투는 방식을 조금 달리한 것일 뿐이다. 주먹을 앞세운 싸움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나라의 리더십이 다시 세워졌지만 왜 상황은 바뀌지 않는 걸까. 우리에게 외생적 위기를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에도 주도적으로 끼어들 틈이 없다. 창해에 던져진 일엽편주. 바로 우리 처지 아닐까. 패권 싸움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아차 하는 순간 당한다.

위기는 어찌 넘어야 할까. 백제 망국사를 거울로 삼을 만하다. 아차 하다 망한 나라가 백제이니. 의자왕 때 백제는 인물에서 신라를 압도했다. 성충, 윤충, 의직, 계백….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왜 무너졌을까. 왕의 어두운 눈, 권력을 탐한 가신, 탕진한 재정 때문이다.

백제의 최후는 김유신의 간계에서 시작됐다. 김유신이 백제 좌평 임자(任子)를 꼬드긴 말, “나라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다.” 나라는 언젠가는 시들 테니 망하면 다른 나라에서 삶을 도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로 그렇게 하자고 묵약했지만 속이는 말이다. 점치는 요녀 금화(錦花)도 백제로 보냈다. 금화는 간첩이다. 금화가 의자왕에게 한 말, “충신 형제를 죽이지 않으면 눈앞에 망국의 화가 있고, 죽이면 천만세 영원히 나라의 복을 누릴 것이다.” 눈이 어두웠던 의자왕. ‘충(忠)’을 돌림자로 쓰는 성충·윤충 형제를 제거하고, 의직과 계백을 밀어냈다. 요녀 말에 따라 화려한 법흥사와 태자궁도 지었다. 텅 빈 나라 곳간. 무엇으로 나라를 지킬까. 망국의 순간에도 사분오열했다. 달아나 의병을 모으자고 한 태자 효(孝), 사비성 사수를 외친 왕자 태(泰), 강화를 주장한 왕자 융(隆). 운명은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열강과 북한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간계를 꾸미고 있을 게다. 정의, 배려? 그것은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그림자를 실상으로 여기는 순간 파국은 코앞에 닥친다.

잔혹한 패권 싸움은 시작됐다. 실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자는 쓰러진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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