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23)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살펴 봐, 내비를!"

입력 : 2017-05-26 17:13:05 수정 : 2017-05-27 10:27:0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자기 몸에 닥친 고통과 피로를 무시하고 무조건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종종 심각한 위험이 닥쳐오리라는 걸 예고하는 징조들도 역시 소홀히 봐 넘기는 경향이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부딪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죽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8천 미터 위에서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복욕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 버린다. 그리하여 에베레스트 산비탈에는 시체들이 즐비하다."
(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 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내려선 마을에서 한 식당에 길을 물었다. 되돌아가란다, 세 시간을. 이 길을 따라가도 세 시간은 걸릴 텐데, 그래도 돌아가는 게 조금이나마 빠를 거란다. 혹 묵어가게 하려고 더 과장된 건 아닌가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 날마다 다니던 길들이라고. 그런 사람 말을 안 믿고 누구 말을 믿겠어?” 

그 건조한 길을, 길을 넓히기 시작하고 있어 마른 먼저 풀풀 날리는, 다시 걸어가느니 곧장 가기로 한다. 페디는 그야말로 계단으로 시작해서 계단으로 끝난다, 네팔 산속 많은 마을들이 그러하듯. 위쪽 페디가 있고 아래쪽 페디가 있는데, 지금 걷는 길은 아래쪽 페디. 마을길을 내려오며 한 숙소를 기웃거려 다시 길을 확인했다. 앞서 알려준 주인 말이 맞을세. 아무렴 여기 사는 그가 잘 알다마다. 

계단, 계단, 계단,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제 끝이겠다, 그러고도 돌계단은 계속된다. 꺾어지면 또 있고, 보이지 않는 저 곳 다음엔 큰길로 내려서려니 하지만 거기 또 내리막 계단이 한없는 양 이어진다, 날마다의 삶에서 우리 앞으로 쏟아져 쌓이는 숙제들처럼.

네팔 젊은 친구들이 음악을 크게 튼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옛적 젊은이들이 모꼬지를 가면 들고 가던 추억의 물품. 그나저나 이마에 땀이 송골거린 까닭을 다 내려오지 않고도 알겠더만. 

그야말로 ‘만 개의 계단’을 밟고 큰 도로에 닿았다. 포카라로 이어지는 하이웨이이다. 몇 개의 식당이 늘어서 있고, 호텔도 하나 있다. 대개는 여기서 트레킹이 끝나게 되고 포카라로 들어들 간다. 

저녁 해가 지다 말고 얼굴에 왔다. 늘어선 가게의 한 집에 말을 넣는다.

“아스탐으로 가려는데...”

버스를 타고 마즈바틱에서 내리란다. 10분이면 갈 거라고.

“그런데, 거기도 호텔이 있어요?”

없단다. 포카라로 아예 나가서 괜찮은 숙소에서 자고 들어와 아스탐을 가란다, 시간도 늦었으니.

“민박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쨌든 마즈바틱으로부터도 아주 많은 계단을 가파르게 적어도 1시간은 넘게 올라야 아스탐에 이를 거라고.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일단 마즈바틱까지 가보구요. 근데, 어떤 버스를 타야 하나요?” 

지역 사람들도 그 버스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지. 그냥 지나쳐버린 버스 뒤에서 낭패스런 표정을 짓자 얘기 나눴던, 식당에서 일하던 젊은 친구가 나와 버스를 세워주었다. 다행히 버스가 잦았다. 올라타자 사람이 꽉 찼다, 어딘가에서 하루치의 수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임직 한. 애쓰지 않은 삶이 어딨을까, 모든 산 것들이 그러하듯. 그대도 나도 욕봤다! 

그럴 때가 있다. 간절하게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 같은. 아스탐이 그랬다. 저녁이 내리는 이국의 산마을에서 굳이 산길을 더 걷겠다는 건 정녕 왜일까. 사물에만 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만 그런 것도 아닌.

마즈바틱에 내리니 이미 6시를 넘는 시간, 산 아니어도 어두워오고 있었다. 홈스테이를 한다는 간판들이 있다. 자려고 들면 묵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보자! 

넘의 동네, 그것도 넘의 나라에서, 심지어 산이라니. 산에서 얼어 죽지는 않을 것 같은 날씨를 믿고, 곳곳에 사람이 깃들여 사는 네팔 산을 좀 알게도 된 게다. 가끔 야간산행도 한 일이 있었던 경험과 산에 익숙한 삶이라는 배짱도.

야간 산행의 매력이란 게 있다. 동절기를 빼면 야간산행은 시야가 좁고 주변을 살피기 어려워 위험도 하지만, 쉽게 지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가파른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오직 발 앞만 보며 가는. 뵈는 게 없는 거지. 여름이라면 그늘만을 찾아 걷는 수고도 하지 않아도 되고. 

거친 상황에 놓여보면 거개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를 마주한다. 때로 아주 작은 순간에도 목숨을 거는 무모함,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I can't go on. I'll go on(계속 갈 수가 없어. 하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사뮈엘 베게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다시 수없는 계단을 오르는 사이 아주 어둑해져서, 가슴에 켠 불로도 더는 발 디디딜 곳을 가늠치 못할 때야 배낭을 내려 헤드랜턴을 켜려할 때, 저만치 불빛 보였다.

“길을 잃으셨네.”

또 길을 잃었던 거다. 어디서였을까?

아스탐까지 4,50분은 걸어가야 한단다. 아, 어쩌자고, 어쩌라고....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살펴봐, 네비를!”

아이 어릴 적,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마을에서 9학년 나이까지 어미 곁에 늘 따라 다녔던, 아이로부터 또박또박 듣는 잔소리 내지 격려 내지 조언은 자주 그러했다. 주로 길 위였고, 운전 중이었고, 내비게이션도 부지런히 떠들고 있는데, 나는 버젓이 내비가 알려주는 데도 그 길을 잘못 가기 일쑤. 도무지 그게 귀에 혹은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 거다. 그러면, 주로 여자들이 운전하면 그렇긴 하지요, 하고 더러 얘기를 하는데, 그게 꼭 운전에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기계류들 앞에서 다 그 모양이다. 뒤에 앉은 아이가 잠시 한눈 판 사이 갈림길이 나오고 어쩔 줄 몰라 하면(이 아이가 내겐 내비게이션이었던) 아이는 찬찬히 힘주며 뒤에서 그리 말하는 거였다, 정말 무어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는 까마득한 시험문제처럼 그만 머리가 하얘지는 걸 알고.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살펴봐얄 것이 어디 내비이기만 할까... 

이제 어떡하나...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