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E.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
거대한 불평등/조지프 E.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십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 모든 계층의 소득이 증가했고, 번영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걸었다. 한때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율은 부유층의 소득증가율을 앞지르기도 했다. “밀물이 밀려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당시 시장의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수의 선도자가 성장의 물꼬를 트면, 그 뒤의 사람들까지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부가 늘면, 하위계층에게도 파급효과가 미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다. 이 같은 성장주의는 시장의 속설을 넘어 주류 경제학의 지지를 받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소득 상위 1%의 부유층과 나머지 계층 사이에 균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신간 ‘거대한 불평등’(The Great Divide)은 한때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고장 나 버린 미국 자본주의의 실태를 분석한다.
책은 저자가 10년간 신문과 잡지에서 불평등에 대해 쓴 칼럼들을 모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진 ‘대침체’(Great Recession)를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들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대침체의 발단으로 레이건 행정부를 지목한다. 레이건 행정부는 금융시장 규제를 역설한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해임하고, 자유시장주의자인 앨런 그린스펀을 후임자로 지정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 직후 도입된 금융규제법(Glass-Steagall Act)을 1999년 폐지한 것도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서울 구룡마을은 오늘날 강남에 위치한 마지막 판자촌이다. 구룡마을과 인근의 타워팰리스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저자는 이 모든 정책 실패가 자신의 이익만을 탐욕적으로 추구하는 소수의 부유층과 이해집단, 정치권의 결탁 때문에 빚어졌으며, 이는 불평등이라는 동일한 현상으로 수렴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대침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 부자 감세정책과 금융기관에 대한 맹목적인 재정지원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점을 강조한다.
경기회복을 위한 해법으로는 불평등을 개선해 수요를 진작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부의 재정정책과 균형 있는 조세정책, 엄격한 금융시장 규제 정책을 주문한다.
저자는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라고 설파한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국민이 불평등을 겪게 되면, 인적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개선은 저소득층뿐 아니라 고소득층에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좌파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숙명으로 본다면, 저자는 불평등이 자본주의가 아닌 정책과 정치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이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거시경제적 분석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불평등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당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의 불평등 경제이론은 남다른 설득력을 가진다. 그는 주류 경제학에 비판적이지만 여전히 ‘주류 경제학자’로 분류된다.
책은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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