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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권력을 버리고 백성을 선택한 경순왕의 미륵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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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6 07:25:05 수정 : 2017-05-26 07: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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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 미륵산 / 쇠락한 국운만큼 고통받던 민초를 구하고자 항복 / 왕좌를 버린 신라 경순왕이 머물며 조성한 미륵불상 / 험한 세상 힘겨운 삶을 구원해줄 오늘의 미륵 되어
한 나라 마지막 왕의 말로는 비참하다. 쇠약해진 국력으로 무엇을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무기력하게 새로운 나라의 왕에게 굴복한 뒤 물러나는 게 순리다. 그나마 생명이라도 부지하면 다행이다. 열의 아홉은 유명을 달리한다. 더구나 마지막 왕은 후대에 무능함의 상징으로 부각돼 명예마저 땅속으로 처박힌다. 대표적인 예가 백제의 의자왕이다. 의자왕만큼 알려지지 않아 명예가 크게 실추되지 않은 다른 마지막 왕들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셈이다.
강원 원주 미륵산 미륵봉에 올라서면 주위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사방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아래 마을이 경순왕이 머물렀다는 귀래면이다.

하지만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다른 왕들과 조금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이미 균형의 추는 고려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경애왕을 죽인 뒤 앉힌 인물이다. 왕위에 오르긴 했으나 고려와 후백제에 밀리는 쇠약한 나라의 왕일 뿐이었다. 당시 영토는 현재의 경주 정도가 전부였다. 군사력을 키울 국가 재정은 텅텅 비었고, 계속된 외부의 침략에 민심마저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려사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경순왕은 신하들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미 강해질 수도 없고 또 약해질 수도 없으니 죄 없는 백성들로 하여금 참혹한 죽음의 구렁으로 몰아넣게 하는 것은 내가 참을 수 없는 일이다”고 하였다. 계속된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민초들을 위해서라도 힘없는 나라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권력을 넘기는 것이었다. 항복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 항복하기 위해 경주에서 개경으로 가는 길에 많은 백성이 나와 지켜봤다고 한다. 고려사엔 당시 모습이 “신라왕이 백료(百僚)를 거느리고 왕도를 떠남에 사인(士人)과 서민(庶民)들이 다 뒤를 따르는지라. 향차(香車) 보마(寶馬)가 연달아 30리에 뻗치고, 길을 가득 메워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둘러친 것 같았다”고 묘사돼 있다.

나라를 통치하던 왕이 백성들을 위해 나라를 포기하자 민초들은 경순왕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가 죽은 뒤 한 나라의 마지막 왕이란 굴욕적 평가야 떼어낼 수 없었지만, 민초들에게는 자신을 희생한 추앙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에 경순왕을 백성을 위하는 임금으로 숭배하며 신으로 모시는 제당 등이 전국에 세워졌다.

민초들에게 숭배받는 경순왕과 관련된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강원 원주 미륵산이다. 미륵산 소재지부터가 귀래면이다. 귀한 손님이 왔다는 귀래면의 손님이 바로 경순왕을 말한다.
원주 미륵산을 오르면 만나는 삼층석탑.

고려에 항복한 후 경순왕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미륵산(옛 용화산)에 올라 수려한 경관에 반해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 학수사와 고자암이란 절을 짓고 머물렀다.

미륵불상을 보려면 경순왕 경천묘에서부터 산을 타면 된다. 고자암에 경순왕 영정이 있었지만 화재 등으로 소실됐다. 조선 영조 때 경순왕 제사를 지낸 영정각을 복원해 ‘경천묘’로 이름 붙였다.
미륵산 미륵불상 근처에 이르면 철계단을 만난다.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는 미륵봉까지는 경천묘에서 40분 정도면 오른다. 경천묘를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황산사터가 나온다. 예전엔 큰 절이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3층석탑과 부도들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다. 황산사는 신라 경애왕 때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황산사터에 이르면 절반 정도 오른 것이라고 보면 된다. 15분가량 더 오르면 철계단을 만난다. 거의 미륵불상 근처에 다다른 것이다.
미륵불상은 코의 길이만 해도 사람 키를 넘을 정도이니 전체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미륵봉 아래에 이르러 바위 위를 올려다보면 미륵불상을 만난다. 눈, 코, 입은 확실히 보이지만 몸통 부분은 얼굴만큼 뚜렷하지 않다. 코의 길이만 해도 사람 키를 넘을 정도이니 가까이서 보면 전체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전설에 따르면 미륵불상은 경순왕의 초상으로 전해진다. 백성을 위해 나라를 포기한 왕이기에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을 만드는 미륵불이 돼서 오기를 바라는 민초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 아닐까 싶다.
원주 미륵산 미륵불상 항공사진. 원주시 제공

미륵불상을 본 뒤 내려가도 좋지만 미륵봉을 올라 산 아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미륵봉을 오르려면 줄에 의존해 암벽등반하듯 올라야 한다. 같이 간 일행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줘야 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미륵봉에 오르면 주위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사방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아래 마을이 경순왕이 머물렀다는 귀래면이다. 아래 세상의 힘겨운 삶을 구원해 줄 미륵불이 돼서 돌아올 경순왕을 기다려본다.

원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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