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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사람들]“시련은 지나가는 소나기”… 대화의 창 열고 삶의 희망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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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3 19:26:11 수정 : 2017-05-24 0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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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의지·노력만으론 변화 힘들어/주위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 병행돼야/자살 시도자 거쳐가는 응급실 지원 거점/퇴원 후 가정방문 등 정서적 안정 도와/본인 동의 있어야만 지원 가능해 한계
“세상은 항상 시련을 주잖아요. 하지만 그건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에요.”

23살 대학생 이모씨의 말은 담담했다. 달관한 듯 인생의 시련을 말하기엔 어린 나이지만 군복무 시절 두 차례나 세상을 등지려 했던 경험에서 나온 얘기였다. 군대 선임병의 집요한 괴롭힘이 화근이었다. 제대 후 한동안 사회 적응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홀가분해졌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3일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자살(자해 포함)을 시도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사람은 2011년 2만1237명에서 2015년 2만6750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한 해 평균 2만4000여명이다. 이들은 다시 자살 시도를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위험군이다. 전체 자살자의 최대 50% 정도가 이전에도 세상을 버리려 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혹독한 시련을 ‘지나가는 소나기’라고 한 이씨의 극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사자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살 시도자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갈 의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주위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부터 맞춤형 지원까지…시련을 떨치다


이씨가 자신의 말에 성심껏 귀를 귀울이는 간호사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동해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까지 생겨 간호대학에 가서 장학생이 됐다. 지금은 우울증 치료제도 끊었다. 이씨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 덕에 더 강해질 수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집안 환경 탓에 목숨을 끊으려 했던 A(19)군은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게 회복에 도움이 됐다.

A군은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인 여성과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 여성은 A군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A군은 “내가 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우울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자살을 시도한 뒤 입원했던 병원은 A군이 가정 학대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기관에서 지낼 수 있게 했다. 3개월만 지낼 수 있는 게 원칙이지만 해당 기관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A군이 졸업할 때까지 지낼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했다.

A군은 센터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를 만나 생기를 찾았다. “잘못된 생각을 했었다”고 후회하는 그는 직장을 구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박모(41·여)씨는 2015년 3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을 따라가려 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며 살까’라는 막막함, ‘세상에는 우리 셋뿐’이라는 고립감이 박씨를 끝없는 절망으로 내몰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잘 버티는가 싶더니 지난 3월 다시 같은 일을 벌였다.

지금도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시설에서 얘들을 잘 돌봐 주니 견디고 살고 있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박씨가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병원과 경찰, 지방자치단체, 지역아동센터의 도움 덕분이었다. 병원은 경찰과 협력해 박씨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를 설득해 인정을 받았다. 지역아동센터는 박씨의 입원 기간 동안 자녀들을 돌봤고 퇴원한 박씨가 양육 걱정을 덜고 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보호 시설을 소개했다.

◆골든 타임 내에 지원 제도 적극 활용해야


자살 시도자들이 거쳐가는 병원 응급의료센터는 효과적인 개입, 지원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응급실 중심의 관리시스템 구축을 권고한 바 있고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 관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가 퇴원하면 ‘사례 관리자’라 불리는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 전문 상담 인력이 최소 한 달간 4차례 가정 방문이나 상담 등의 서비스로 정서적 안정을 취하게끔 돕는 것이다.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연결해 주는 일도 맡는다. 2013년 6월 25개 병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됐고 지난 3월 42개 병원으로 확대됐다. 사업을 수행하는 병원들은 광역·기초자살예방센터 38곳, 광역·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 234곳과 협력하고 있다. A군과 박씨도 각각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어렵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다.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지원이 가능해 활용률이 낮은 편이다.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자살 시도자들은 도움 받기를 주저하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해 사업을 수행한 병원을 찾은 전체 자살 시도자의 64.7% 정도만 이 사업을 활용했다.

사업 내실화를 위한 예산 확충의 필요성도 크다. 병원별 예산은 2014년부터 매년 8000만원으로 동일하고, 올해 새로 참여한 병원의 경우에는 7000만원이다. 사업 예산이 매년 똑같다 보니 유능한 인력이 장기적으로 근무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만큼 전문 인력의 손실로 이어진다.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자살을 시도했거나 생각 중인 사람에게 골든 타임은 ‘바로 지금’”이라며 “약물 치료로 좋아지는 경우와 상담을 통해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의 전문가에게 문의하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해결책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살 예방 핫라인(1577-0199)이나 보건복지부 콜센터(129), 한국생명의전화(1588-9191)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사회부 경찰팀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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