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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韓·日 ‘위안부 합의’ 유엔 같은 객관적 틀 바탕으로 풀어야”

입력 : 2017-05-23 19:13:37 수정 : 2017-05-23 19: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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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日 와세다대 교수/‘민청학련 사건’ 연루 서울대 공대 제적/ 10년후 일본행… 한반도 문제 전문가 변신/“북핵 위협·사드 문제서 한국 소외 상황/ 문재인 정부 정상외교 美·中 우선 순위”
재수 생활을 거쳐 1972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한 대구 소년은 산업 역군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정부는 ‘공업입국’을 외치고 있었고, 포항제철이 생긴 지 4년이 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해 유신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나섰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제적됐다. 학교에서 쫓겨난 지 10년이 돼도 복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1982년 일본행을 결심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높았던 시기였고, 한국의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국제정치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후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겨 학업을 계속했고, 공학도였던 소년은 일본 내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가 됐다.

1882년 설립돼 올해로 설립 135년을 맞은 일본의 명문 와세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종원(64)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과)의 이야기다. 그는 2013년 이 대학 내에 설립된 한국학연구소의 소장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신문이나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저명인사다. 그의 정세분석은 객관적이고 날카로우며, 한국이나 일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출신이면서도 35년 동안 일본에 머무르며 한·일 관계를 지켜봐 온 특이한 이력 덕분이다.


그는 최근 악화한 한·일 관계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양국 문제로만 국한하지 말고 유엔 등 객관적 국제 기준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우호 여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와세다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이 교수와 만나 한·일 관계의 현황과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상외교가 오랫동안 공백이었다. 문재인정부의 정상외교 우선순위를 꼽는다면.

“외교가 전방위에 걸쳐 막힌 상태다. 가능하면 동시에 많이 해결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중국과 풀어나가는 게 우선이다. 북핵 위협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중요한 문제인데 그동안 한국이 소외된 형태로 상황이 흘러왔다. 문 대통령도 그 때문에 6월 미국을 먼저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7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타당한 순서다. 일본도 동시에 정상외교를 추진하면 좋겠지만 현안의 심각성을 보면 역시 미국·중국이 먼저인 것 같다.”

-최근 한·일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지난 20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와세다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이종원 교수가 한·일 관계에 대한 진단과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와 다른 문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투트랙’으로 대일 외교를 하겠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인데, 현명한 판단인 것 같다. 최근 특사가 일본에 와서 ‘셔틀 외교’ 재개를 얘기한 것도 잘한 일이다. 역사는 따로 대응하면서 북한 대응, 경제, 문화 등 필요한 부분은 선제적으로 외교에 나서야 한다.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재검토 문제는 일단 경위 등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보류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분야는 관계 회복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먼저 일본을 방문해 여러 분야의 협력을 논의하고, 역사 문제도 일본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새 정부 출범 초기 일본에도 특사를 보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양국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대일 외교는 투트랙으로 가야 하는데 박근혜정부가 이를 결합시켜 버린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그때는 오히려 일본이 투트랙 입장이었다. 나중에 미국의 압력 또는 요청으로 정상회담을 안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이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든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애매하고 불충분한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역사 문제에서 일본이 공세, 한국이 수세에 몰리는 ‘전세 역전’이 벌어졌다. 지금은 일본이 오히려 이 합의를 통화스와프 등 다른 문제와 결합시키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일본은 이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약속을 했고 일본은 약속대로 돈을 냈는데 왜 한국은 약속을 안 지키느냐’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했다. 공식 조약이 아니더라도 위안부 합의는 한·일 공동발표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무역협정을 줄줄이 깬 것처럼 정권이 바뀌면 국제적 약속을 파기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국제 여론도 중요한 시대다.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이 합의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해야 한다. 양국 문제로만 한정하면 싸움만 된다. 유엔 같은 객관적인 틀을 바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마침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위안부 합의의 재검토를 권고한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대북 대응 문제를 놓고 문 대통령을 경계했던 것 같은데.

“일본뿐 아니라 미국도 부담스러워했다. 미국과 일본의 현 정권은 강경 보수로 볼 수 있다. 특히 북한 문제는 더 그렇다. ‘평양에 가겠다’고 공언한 문 대통령에 대해 경계심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북한 문제는 복잡해서 국제협력,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물론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심에 서야 한다. 그런데 한국이 단독으로 움직이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다. 일단 미국과 협의하면서 대응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반발 정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정부 출범 시기가 절묘했다. 조금 앞당겨졌다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언급하는 상황이어서 곤란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새 정부가 출범한 덕분에 한·미 협조가 수월한 상황이 됐다. 북한을 매개로 중국과도 협조가 가능한 분위기다. 중국이 제시하는 해법은 한국과 공통점이 많다. 상황 악화를 막으면서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병행 추진한다는 방향은 문재인정부와 똑같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일본 정부의 위험 인식이 다소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미사일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는 데다 핵 탄두를 실을 수 있게 되면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사거리 안에 들어간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로 북한의 위협을 더 강조하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헌법 개정, 군사력 강화, 방위비 증강, 첨단 무기 구입을 추진했다. 일본은 전수방위원칙 때문에 공격 무기가 없는데 북한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 보유 필요성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데, 노림수는 무엇이라고 보나.

“북한은 미국의 레드라인(한계선)을 보면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경우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은 그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도발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정면충돌은 피하면서 미사일 능력을 과시해 외교 교섭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미국과의 외교 가능성을 소멸시키는 상황은 자제하면서 북·미 직접 교섭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인 것 같다. 한국은 북·미 독자 교섭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또 중국과 협력해 6자회담 재개 노력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도 좋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전면적인 관계 회복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역사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신성장산업이나 고용창출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가 많다. 시간이 갈수록 한·일 간 마찰도 늘어나겠지만 협력도 필요하다. 한·일 간 힘의 관계 변화, 중국과의 거리 차이, 한국이 인식하는 중요 국가의 순위 변동 등이 변수다. 하지만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1953년 대구 출생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중퇴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도쿄대 정치학 석·박사 ●도후쿠대 조교수 ●릿쿄대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와세다대 교수(2012년∼현재)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 소장(2013년∼현재)


도쿄=글·사진 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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