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집권한 문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을 과제로 떠안았다. 개혁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다. 적폐들을 우선순위를 가려 청산하되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을 병행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 통합이 문제다. 통합은 개혁의 최종 목표다. 온갖 이유로 사분오열된 나라에서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통합을 할지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지금껏 가자는 구호만 무성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다.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갈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
정조는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정말 잘 다스려진 시대에는 누구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경’에는 “좋은 말이 숨어 있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누구나 말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정녕코 이 세상에서 말하는 자가 없으면 나라가 제대로 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실행에 옮겼다. 신하들에게 편지를 보내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하루가 일년처럼 길어 그리운 마음이 간절했다. 마침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직접 얼굴을 보는 듯하다.” ‘정조어찰집’에 있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정적(政敵)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다. 당파를 가리지 않는 소통이다.
소통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중국 철학자 두웨이밍은 ‘문명들의 대화’에서 “진지한 경청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타자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경청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공동체는 경청하는 집단”이라고 했다. “정치적 공간이란 그 안에서 내가 타인들을 만나고, 타인들과 이야기하고, 타인들의 말을 경청하는 공간”이며 “경청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매개해 비로소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만났고, 청와대 측은 “소통과 경청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초당적 협력을 위한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합의를 이끌어내 협치의 시동을 걸었다. 여소야대의 5당 체제에선 협치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래야 국민통합과 개혁이 동력을 얻는다. 지금까지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허니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내일 열리는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국회의 각료 검증이 본격화하면 새 정부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개혁이 진행되면 관련 법안 처리 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야당 공세도 거세질 것이다. 여기서 주춤거리면 국민의 실망감은 커진다.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빠지지 않는 비결이 소통과 경청이다.
소통과 경청은 고도의 인내력을 요구하는 험한 길이지만, 대통령이 야당들의 협력을 얻고 국민과의 공감을 확대하는 지름길이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길일 것이다. 나아가 모두의 지혜를 모아 당면한 복합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다. 그 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