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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어둠을 지나온 시… 편안하지만 서늘한 감동 주고 싶다”

입력 : 2017-05-22 20:49:11 수정 : 2017-05-22 20: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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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 만에 돌아온 안도현 시인 / 朴 정부 때 절필 선언… 다시 펜 잡아 / 창비 여름호에 신작 시 ‘안동’ 등 담아 / “내 허물도 보고, 새로운 실험도 하고 많이 빨리 쓰고 싶은데 잘 안 나와…” ‘누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쓰면/ 우리 애들과 조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고모가 생겼으니 고모부도 생기고/ 고종사촌도 생기니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궁을 꺼내 내다버렸고/ 시는 한 줄도 내게 오지 않았다// 저녁이 절룩거리며 오고 있었다/ 술상에는 소고기육회와 문어숙회가 차려졌고/ 우리는 소주를 어두운 뱃속으로 삼켰다/ 폐허가 온전한 거처였다/ 누구도 폐허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안동시 평화동 낡은 아파트 베란다 바깥으로/ 쉬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주시 인근 완주군 구이면 작업실에서 만난 안도현 시인. 4년여 만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두근거리고 설레기도 하지만 기대하는 이들에게 매를 덜 맞아야겠다는 부담도 크다”며 웃었다.
안도현(56) 시인이 절필 선언을 한 지 3년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시로 돌아와 최근 ‘창비’ 여름호에 보낸 신작시 ‘안동’ 부분이다. 어머니는 자궁을 꺼내 내다버려서 더 이상 누이를 만들 수 없고, 내게도 시는 한 줄도 오지 않았다지만 사실 ‘누이 같은’ 시가 올 수 없게 자궁을 꺼내버린 건 정작 그 자신이었다. 토끼 간처럼 꺼내어 말려둔 자궁을 다시 찾아오긴 했지만 메마른 곳간에 시는 쉬 찾아들지 않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의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결의를 실천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올린 트윗이 빌미가 되어 그는 3년여 동안 대법원까지 가는 긴 재판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욕지기가 날것으로 시에 담길까봐, 시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시인의 순정을 스스로 보호하고 싶어서 내린 결단이었을까.

“시를 보호한다기보다 박근혜 정부가 어처구니없는 형태를 너무나 많이 보여서 시인 입장에서 그런 걸 비판하고, 발로 차고 꼬집고 때리고 하는 시를 써야 하는데, 옛날 저항시처럼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시인으로서 나한테 별 의미가 없는 거고, 그래서 오히려 쓰지 않음으로 해서 시인의 결기랄까 그런 걸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안도현을 전주에서 만났다. 완주군 구이면 신원마을, 그의 작업실로 먼저 가서 시인 부부가 마당의 잔디를 깎는 과정을 지켜본 뒤 다시 시내로 나와 정좌했다. 오래 미뤄둔 집안일이라고 했다. 20여년 전 빈 집을 구해 개조한 작업실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시 쓰기를 재개한 뒤 ‘시인동네’에 2편을 발표했고, 이번에 다시 청탁받은 2편을 쓰는 중이라고 했다. 다시 쓰기로 작정한 뒤로는 ‘많이 빨리’ 쓰고 싶은데 지난 4개월 동안 시가 잘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았다는 건 결과적으로 게으른 것일 수 있지요. 30년 넘게 시를 써왔는데 그중 10분의 1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줄도 안 썼으니까. 막상 쓰기로 마음을 먹으니까 나 스스로 게으른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였고 나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더 많이 쓰고 싶은데… 이제 잘 써질 거 같아요, 대선도 끝났으니.”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네트워크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도 맡아 새 정부 탄생에 적극 기여했던 시인이고 보면 대선이 끝나 홀가분해졌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대선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는데, 새 정부에 입각하느냐에서부터 이런저런 민원까지 몰려들어 짜증이 났다고 했다. 그는 후보에게도 여러번 말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시인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도 주변이 오히려 시인을 괴롭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시인이 정치의 근거리에 있을 때 겪어야 할 응보인 걸까.

“그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군부 시절을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시인이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게 순수한 것처럼 왜곡된 측면이 있어요. 권력에 붙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사회에서는 시인도 그냥 시민의 하나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경림 황현산 같은 원로분부터 소장 문인들까지 이번에 지지선언을 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지요.”

그를 만나러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검색해본 그의 트위터는 그동안 날선 트윗들과는 달리 아늑했다. 처마 안쪽 딱새 둥지의 새끼들이 눈을 떴을지, 노란 입들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지, ‘나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딱새의 육아’라고 했다. 안도현이 다시 시를 쓰기로 한 뒤 처음 쓴 시는 ‘그릇’이다. 오래 된 그릇을 얻어 자세히 보니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고, 그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고 시인은 썼다. 그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고,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고. 깊어진 연륜이 보이는 시라고 했더니 그는 가볍게 ‘반성문’이라며 웃었다. 또 다른 시 ‘뒤척인다’는 주어를 배격하고 서술어로만 이어지는 형식 실험이 눈에 띈다.

‘미끌거린다 매슥매슥하다 뜨고 있다 추근거리는데/ 콩당콩당한다 띄운다 뜬다 흘러들어 간다 아롱거린다/ 차오르고 있다 켜진다 따돌린다 떼쓰고 만지고/ 다짐받고 투항하고 촐랑대는데 싸르륵거린다 내린다/ 망해도 좋아, 날 좀 내버려둬, 작렬하고 있다 모여든다/ 흩어진다 뿌린다 두드러진다 더듬거린다 쿨럭이다가/ 다물어진다 수런댄다 미끌어지고 있다 갈망한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세밀하게 응축돼 있기도 하고 육체적인 사랑 행위를 중계하는 듯한 관능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작 시인은 미혼모가 되겠다는 딸과 다투는 엄마의 관계를 묘사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주어가 ‘갑’이고 서술어가 ‘을’인 셈인데 ‘을’로만 채우는 시를 써보고 싶었다”면서 “형용사는 머물러 있는 형상인 데 비해 꿈틀거리고 뒤척이는 동사 자체는 관능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묵정밭’ 시기를 거쳐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밭에서 그는 어떤 시들을 길러내고 싶을까.

“시를 쥐어 짜면서 쓰는 스타일입니다. 수도 없이 퇴고하고 허점이 없나 다시 보고, 아등바등 시를 쓰거든요. 그게 사실은 완전주의를 추구하는 건데 내가 아무리 완벽한 시를 발표하려고 해도 지나고 나면 완벽하지 않은 거더라구요.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도 이제는 좀 헐렁헐렁한 시를 쓰고 싶어요. 너무 정돈되고 정렬된 형식으로서의 시 말고, 편하면서도 좀 불안하고, 새롭고 서늘한 감동을 주는 그런 시…”

그를 만나고 돌아와서 뒤늦게 그가 완성해서 ‘창비’에 보냈다는 두 편을 받아본 것인데, 그중 한 편인 ‘편지’는 암향(暗香)으로 퍼지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누님, 누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봄날의 화유(花遊)였으면 했습니다 누님의 위독한 증세는 매화나무로 이주해 매화꽃은 뱃속에 큰 병을 얻었습니다 울지도 못하고 꽃이 피었다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죽음은 한 차례도 닿지 못한 누님의 내해(內海) 같아서, 살고 죽는 일이 허공에 매화무늬 도배지를 바르는 일과도 같아서’라고. “왜 이리 어두우신가” 물었더니 “사회적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은 편안한 시를 써보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는 본디 어두운 것이라고, 말했다.

완주=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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