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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국방부여, 적폐청산을 두려워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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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1 08:05:00 수정 : 2017-05-20 14: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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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을 위로하고 있다. 광주=청와대사진기자단
적폐(積弊). 국어사전은 이 단어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으로 정의한다.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파일 정리를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컴퓨터의 속도가 느려지듯, 폐단을 제때 치유하지 않으면 조직이나 사회를 통째로 뒤흔드는 충격파를 안기거나 활력을 잃고 시름시름 병들어가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발생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적폐청산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군도 예외가 아니다. 37년 전 전남 광주에서 발생한 5.18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일부 선배 군인들의 과오를 다시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당시 발포 책임자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지목했다. 문 대통령은 “5.18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히겠으며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 왜곡을 막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5.18 진상규명 의지를 밝힌 만큼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 차원의 5.18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당시 발포 명령자와 헬기 기총소사 책임자 식별등 지금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사실들을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18의 진상이 규명되려면 군이 당시 자료를 어디까지 공개하느냐에 달려있다. 군은 30여년 전의 어두운 적폐를 청산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1980년 5.18 당시 군 헬기가 전일빌딩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 발포 명령 내린 사람이 누구냐

5.18 진상 규명의 핵심은 군의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가에 대한 것이다. 5.18 당시 계엄군의 첫 집단발포는 5월21일 오후 1시쯤이다. 계엄군은 전남도청과 금남로에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자 사격을 감행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시민에게 처음으로 집단발포한 사건이다. 계엄군은 이후 시위대 해산과 전남도청 진압작전 과정에서 수백여명을 사망케 했다.

상명하복의 체계 특성상 현장에 있던 계엄군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사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직후 김영삼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5공 청문회, 5.18 특별법 제정,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했지만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시 신군부의 실세이자 보안사령관을 맡고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명령 과정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지만 전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 투입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발포명령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계엄군이 헬기에서 총격을 가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1월 전남도청 옆 전일빌딩에서 헬기에서 사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 185곳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헬기 사격은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엄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의 증언 등으로 UH-1H나 500MD 등 육군 항공대 소속 헬기의 발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발포가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신군부측의 주장과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설령 자위권을 발동했다 해도 민간인들을 향해 헬기에서 기총소사를 가한 것은 자위권이 아닌 학살에 가까운 행위로 그 전모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최상층(10층) 천장에서 발견된 탄흔. 연합뉴스
◆ 진상규명, 이번엔 제대로 이루어져야

문 대통령이 5.18 진상규명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5.18 진상규명을 위한 후속 조치에 착수할 전망이다.

진상규명의 성패는 군 당국에 달려있다. 행정자치부나 경찰 등에도 자료가 있지만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모든 권한이 군에 집중되어있었던 만큼 질과 양 측면에서 군이 보유한 자료가 진상규명의 핵심이다. 당시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었으며, 신군부를 주도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다. 따라서 보안사령부의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와 육군 관련 문서들을 생산 및 보관하는 육군본부에 자료들이 보관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37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등 군의 역사를 연구하는 기관들로 기록이 이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이 사령관으로 있었던 기무사는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의 특성을 고려할 때, 5.18 진상규명을 뒷받침할 핵심 자료들이 상당수 존재할 개연성이 있다.

문제는 군이 어느 수준까지 자료를 공개할 의지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차례의 진상규명 시도는 발포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였는지 등 핵심 의문에 대해서는 한계를 보였다. 군이 상황 및 작전일지 등 핵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군이 보관하고 있는 당시 자료에 대한 포괄적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하고 있다. 광주=청와대사진기자단
군이 자료를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군 소식통은 “대통령이 기무사 등 군의 감찰과 정보 파트를 확실히 장악해야 자료 발굴을 통한 진상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보공개청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군사보안을 앞세워 정책 집행 과정에서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군이 스스로 자료를 공개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반면 12.12와 5.18을 주도한 신군부와 그들의 영향을 받은 하나회 인사들이 오래 전 군을 떠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신군부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현재 군 수뇌부가 5.18 관련 자료 공개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37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관련 자료가 디지털화되어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자료 발굴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군 내 5.18 자료 확인을 전담하는 테스크포스를 만들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로 많은 사실이 공개됐고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았으며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사면도 이뤄졌는데, 또다시 진상규명에 나선다면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군의 명예와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같은 시선은 일제 침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예전에 사과했으니 역사적 진실 밝히기나 추가적인 사과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선진국의 경우 군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로 군부의 대의명분을 확보하고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인권을 유린했던 드레퓌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육군 장교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는 1894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군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힌다. 진범이 밝혀졌지만 군법재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진범을 밝혀낸 사람은 좌천시켰다. 10년 동안 프랑스의 국론을 분열시켰던 이 사건은 1906년 드레퓌스 대위가 사면 복권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와 군은 이 사건을 잊혀진 역사로 방치하지 않았다. 1898년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 항의해 작성한 <나는 고발한다> 100주년이었던 1998년 1월13일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졸라가 생전에 살던 집에서 현판식을 갖고 기념비를 헌정했다. 졸라가 안치된 팡테옹에서는 당시 왜곡된 공권력을 휘두르며 은폐와 조작을 일삼았던 법무부와 국방부 장관이 참석해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하며 졸라에게 경의를 표했다. 2013년 프랑스 국방부는 드레퓌스 사건 관련 기밀문서를 모두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일반에 무료 공개했다.

독일 연방군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치의 잔재를 지우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 연방군은 기지 이름에서 나치 독일의 전쟁영웅 이름을 쓰지 않는 방안을 추진한다. 거물급 전범은 오래전부터 쓰지 않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공적을 많이 세웠으면서 전쟁범죄와 연루되지 않았던 나치 군인들 중 일부의 이름이 연방군 기지명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나치 독일과 철저히 선을 긋는 독일 연방군의 입장과 배치되는 상황을 감안해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국방부를 방문, 전군 지휘관이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군이 떠안고 있던 적폐 가운데 12.12와 5.16 군사 쿠데타는 어느 정도 청산됐다. 군인들은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과 그 정치권력이 임명한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다. 반면 5.18은 여전히 군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으로 남아있다. 과거 진상규명 당시에는 12.12를 주도했던 신군부와 하나회의 위세가 강했지만 현재의 군에는 정치군인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와 독일의 군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인정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천명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얻었다. 우리 군도 스스로 적폐를 청산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 셈이다. 민간 정치권력은 군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군은 문민통제를 받아들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민군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려면 적폐로 지목된 5.18에 대한 반성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완전한 진상규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며, 국민이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 상식과 정의는 민간과 군이 다르지 않다. 군인도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국민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고 키우는 일에 군이 동참해야 할 이유다. 적폐청산과정에서 드러날 치부를 군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환부를 도려내고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잠깐 죽는 것 같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군 수뇌부는 어두운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군대를 젊은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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