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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작품도 영혼이 깃들어야 생명력 가진다”

입력 : 2017-05-16 21:20:09 수정 : 2017-05-16 2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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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집 발간 기념전 여는 이중희 화백 농악대와 임금의 행렬이 강렬한 색채로 꿈틀거린다. 춤사위도 예외가 아니다. 꽃살창호도 색채의 향연이다.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선 생명력이다. 한국인의 신명, 영적인 감흥이 넘쳐흐른다. 이중희(71·원광대 명예교수) 화백의 작품이다.

“한 인간의 존재처럼 작품도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생명력을 갖게 된다.”
강력한 보색대비로 영혼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중희 작가.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인간의 본질과 무의식을 깨우는 ‘미학적 굿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칼을 휘두르는 듯한 붓질로 오싹함의 전율을 내지르고 있다. 게다가 무속화나 단청, 탱화 등에서 사용하는 보색들을 가감 없이 병치시킨다.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작업이다. 빨강과 녹색 등이 충돌하면서 아찔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어린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따라갔던 사찰에서 화려한 단청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탱화를 보며 소름이 돋았던 기억과 감수성이 나의 화폭의 DNA가 된 것 같다.”

그는 프랑스 색채 거장인 마티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화두삼아 평생 작업을 해왔다.

“서구인들이 구사하는 색의 패턴은 우리와 다르다. 보색이 직접 부딪치는 법이 없다. 색채는 아름답지만 신비로운 느낌, 영적인 느낌을 주지 못한다.”
꽃살문 창호.

그는 수성인 아크릴과슈를 쓴다. 유화의 번들거림을 피하고 단청에서 볼 수 있는 무광택의 단백한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에도 붙들리지 않는다. 형태는 그저 무의식을 깨우는 도구일 뿐이다. 형태는 해체되고 격동적인 붓놀림이 영혼을 일깨운다. 한바탕 무당이 영혼을 불러내는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흡한 대로 고상하게, 굳이 표현하다면 기운생동만 캔버스에 남아 있다.

“그림을 그리기 전 본질과 마주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충만한 상태에 몰입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매일 2만평에 가까운 작업실 정원을 손수 가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번 나의 다락방을 찾아 들어앉기 위한 방편이다.”

그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만져지지 않지만 실재하며, 설명할 수 없으나 분명히 살아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작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내부 깊숙이 자리한 본성과 연결된 절대적 실존을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야 한다.”
단청.

그는 단청이나 탱화, 무속을 접하면서 영혼을 흔드는 색의 조합을 터득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한국적 색채이기도 하다.

“작품은 화가의 영혼이 오롯이 이입된 생명체다. 일부 작가들은 조수가 대부분을 그리고 사인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영혼 없는 생명체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는 종종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들을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해 화폭에 옮긴 박생광(1904∼1985) 화백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무녀도를 그려도 박생광 화백이 표정과 눈빛을 세세히 그렸다면 그는 내던지듯 붓놀림을 했다. 형상 너머를 추구한 것이다.
춤.

“박생광 선생님이 대상의 조합, 배치, 구성 등을 중요시했다면 나는 대상을 깨트려 선이나 점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도록 했다. 기운생동의 동양적 미학에 충실한 셈이다.”

한국적 색채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화업을 총정리한 화집을 최근 발간했다. 198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400여점을 실었다. 화집 발간 기념전을 22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연다. 2000년대 이후 작업한 100호 이상의 작품 30점을 선보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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