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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비정규직 "연봉 올라 좋겠다고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입력 : 2017-05-19 18:37:31 수정 : 2017-05-19 22: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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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경비·보안담당 비정규 직원이 순찰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비정규직 1만명 전원을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이어 지난 15일에는 ‘좋은 일자리 창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는 등 행보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과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온 정규직의 불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등의 지적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 15일 만난 인천공항의 비정규 직원들은 이런 지적들에 '서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꽃에 물을 주고 있다.

◆“연봉 인상이 아니라 고용안정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이날 공항에서 만난 경비·보안업무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이강모(가명)씨는 “정규직 전환에 기대하는 건 경력에 대한 인정과 고용안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지는 폭력사건이나 테러에 대비하고, 위험물에 대처하는 일을 한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일인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러나 비정규 직원들은 오래 일할 수 없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청업체에서 기본 3년을 보장받고, 2년 연장을 하면 5년 후에는 다른 하청업체로 적을 옮겨야 공항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다"며 "옮길 때마다 경력이 사라져 1년차 신입과 공항 10년차 고참의 월급 차이가 10만원도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일이 좋아서 버텨왔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부심이나 책임감이 생기겠느냐”며 “정규직 전환을 계기로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씨는 또 “보안업무 직원 중에는 중간층이 비어있다”고 전했다. 

어린 나이에 온 신입사원들은 비정규직으로 비전이 없다며 나가고, 업무를 잘하는 이들도 2~3년만 하다 보면 현실을 깨닫고 나가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이런 근무 환경인 만큼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수준 높은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인천공항에서 5년 넘게 비정규직 청소원으로 일한 이상화(가명·54)씨도 “하청업체를 갈아탈 때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경력과 연차 이런 모든 게 초기화되는데 무슨 (일할) 동기가 생기겠느냐”고 털어놨다.
 
이씨는 이전 하청업체에서 1년에 주어지는 15일 연차 휴가를 3년 이상 일하면 20일로 늘려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중간에 하청업체가 바뀌면서 재계약을 해야 했고 결국 연차 확대는 없던 일이 됐다. 경력 또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청소상태를 평가하는 SQ(고객만족도) 설문조사가 1달에 2~3번 있는데 좋은 성과를 받아도 보상은 없다”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고용안정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실에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올라온 인천공항공사의 지난해 결산에 따르면 정규직 1161명의 1인당 1년 평균 보수는 8853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신입사원 초임만 해도 4215만원 수준이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31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문 대통령 방문 후 지원자 넘쳐

공항에서 3년간 교통정리 업무를 한 이광식(가명·56)씨는 “여기서는 50대 신입이 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한달 190만원 정도 버는데 아르바이트가 아닌 이상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지원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주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은퇴한 50대 이상이 일거리를 찾아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하루 12시간 일해야 하는 격무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처럼 나이 지긋한 비정규직은 생계를 위해 버티고 있다”며 “내가 속한 협력회사에는 노동조합도 없어 처우가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방문 후 비정규직 지원자가 몰린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이곳에서 순찰 일을 하는 최진섭(가명)씨는 “문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공항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이들이 넘치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최씨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다녀가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2터미널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난리였지만 현재는 반대의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공사가 2터미널에서 일할 이들까지 포함해 1만명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지금 입사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지원자가 쏠리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현재 공항에는 46개 협력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6903명이 일하고 있다. 여기에 연말 2터미널이 개통되면 비정규직은 모두 9924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정규직 전환 대상 아닌 비정규직은 부러움의 시선만

공항에 상주하지 않거나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에 속한 비정규직 직원들은 거의 날마다 마주치는 다른 상주 비정규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에 마냥 부러워하고 있다. 공항이 필요할 때마다 입찰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는 아웃소싱 기업 소속 비정규 직원은 “무엇보다 고용 안정을 보장받는 게 부럽다”며 “우리들은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게도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공항을 터전으로 삼은 비정규직 간 위화감이 빚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아직 정규직 전환방안에 대해 공항 비정규 직원들은 정확하게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정규직 전환 발표에 공항 측과 협력회사 측 모두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는 중이다.

공항 폐기물 담당으로 일하는 김지홍(가명·54)씨는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고 있다”며 “비정규직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전환될 지에 대한 소문이 계속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이어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것 같다”며 “비정규직이 워낙 많아 단계적으로 전환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관계자는 “공항을 시작으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점차 전환될 텐데 우리가 본보기가 된 셈”이라며 “주먹구구식이 돼선 안 된다는 사명 아래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있으며 공항 측과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인천국제공항 근처 전광판에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세계 1위를 달성했다는 광고문구가 보인다.

◆ 숙련도는 높아지는데 경력은 인정 안 돼... 하청업체의 그늘

공항의 보안 관련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이경진(가명·35)씨는 “3~5년마다 협력업체가 바뀌면 이력서도 다시 내야 하고 면접도 다시 본다”며 “대부분은 다시 채용되는데, 숙련된 노동은 그대로 가져가고 임금은 절약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공항 비정규직은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협력회사에 따라 근무 조건과 처우가 천차만별이었다.
 
공항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이지훈(가명·26)씨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협력사마다 근무 패턴이 다르고 연봉과 연차, 심지어 휴식시간까지 다른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노조가 있는 협력회사는 처우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는 열악하다”며 “비정규직은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고 억울한 심경을 털어놨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신철 기획국장은 “정규직 전환은 처우뿐만 아니라 공항의 서비스 개선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국장은 “하청업체가 중간에 있으면 현장의 상황을 공사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며 “지난해 수하물 대란과 밀입국 사태 등 인천공항의 주요 사고에는 이런 소통의 장벽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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