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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말년병장’ 韓국방은 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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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30 09:00:00 수정 : 2017-04-30 10: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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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1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통화하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국방부 제공
“말년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군복무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말년병장은 전역이 늦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복지부동’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서울 용산에 있는 한 말년병장은 여느 말년병장과는 다르다. 사회 복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맡은 일을 속도전으로 처리한다. 이 말년병장이 바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다.

2014년 6월 30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된 김관진 전 장관의 후임으로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한 장관은 자신의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부하에게 지시를 내릴 때도 자신의 지시가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도록 할 정도로 신중하다. 그런 한 장관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주한미군 사드(THAAD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 14개월 동안 몰아치기식 업무 수행

한 장관의 속도전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6월3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사드의 한국 전개를 요청했다”고 발언한 이후 정부는 3NO(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 원칙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12월9일 이순진 합참의장(왼쪽)과 함께 전군주요지휘관 화상회의를 주재하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 국방부 제공

하지만 지난해 2월7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하자마자 한 장관은 주한미군과 사드 배치 협의 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사드 배치 논의를 위한 한미공동실무단 출범(3월4일), 사드 배치 공식 발표(7월8일), 사드 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 결정(7월13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으로 주둔지 변경(9월30일) 등 협의 개시 선언부터 부지 결정까지 소요된 시간은 7개월에 불과했다.

이후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현지 주민들과 주둔지 인근에 성지를 두고 있는 원불교의 반발성주골프장 소유주인 롯데측으로부터 부지를 넘겨받는 대신 경기 남양주 군용지를 제공하는 내용의 부지 교환계약을 국방부가 2월28일 체결하자 주한미군은 3월6일 C-17 수송기편으로 사드 발사대 2기를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국내에 반입했다. 이후 4월26일 성주골프장에 사드가 배치됐다. 사드의 반입 주체는 주한미군이었지만 경찰과 군 당국 등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한 장관이 사드의 조기 작전 운용개시에 공감하지 않았다면 대선 전 사드 배치는 어려웠다는 평가다.
27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부지에 사드 장비들이 배치돼 있다. 국방부는 이날 성주골프장에 들어간 사드가 유사시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성주=연합뉴스

국민감정과 직결되어 있어 2012년 이후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한 달 만에 해치웠다. 지난해 9월 라오스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GSOMIA 체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직후 국방부는 같은해 10월 27일 GSOMIA 재추진을 전격 발표했다. 11월 1일과 9일 도쿄와 서울에서 2차례 실무협의를 마치고 14일 협정안에 가서명했다. 이어 법제처 심사 종료(15일), 차관회의 통과(17일), 국무회의 통과 및 박근혜 전 대통령 재가(22일)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23일 협정이 체결됐다.

◆ 소신과 업적만 있고 국민은 없나

한 장관이 사드 배치와 GSOMIA를 단기간에 밀어붙인 것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말기 업적 쌓기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오바마는 임기 말 오바마케어(의료보험), 이란 핵협정 타결,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총기 규제 강화, 이민 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 그 전까지는 이렇다 할 업적을 만들지 못했지만 퇴임까지 2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부터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업적을 쌓고자 노력했다.
26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사드 장비가 배치돼 있다. 대구일보 제공

조직의 수장이 임기 말 업적 쌓기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자신이 속했던 세계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되려면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특별한 일을 시도해 그것을 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 법학을 공부한 오바마는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전임자들이 하지 못했던 사안들에 집중해 성과를 냈다.

한 장관은 사드 배치 문제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국방정책에서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낸 적이 많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하자마자 22사단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사건, 28사단 윤일병 폭행사망사건으로 분출된 국민들의 병영문화개선 요구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2015년 8월 발생한 북한 지뢰 및 포격도발국면에서 군사적 대응을 주도했지만 그 결실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전쟁위기를 수습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돌아갔다. 한 장관이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창조국방’은 관련 홈페이지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이 손대기 꺼려하는 한일 GSOMIA와 사드 배치에서 총대를 멘다면 자신의 업적쌓기에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가 공공의 이익과 결합되면 관료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측면에서 개인의 소신 관철이나 업적 쌓기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국민감정을 의식해 표현을 못할 뿐, 안보 증진을 위해 한일 군사협력 강화와 사드 배치를 원하는 현역 군인 후배들의 숙원을 선배 입장에서 풀어준다는 점은 부수적 효과다.

점증하는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소신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군 관계자는 “장관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다소 욕을 먹더라도 자신이 총대를 맬 필요가 있다는 뜻을 주변에 여러 차례 피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와 한일 GSOMIA는 국가안보 문제를 더 고려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절차를 무시하면 정치환경변화에 따라 정책 뒤집기 등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업적들 중 상당수는 공감대 형성과 설득이 부족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뒤집어질 위기에 처했다. TPP는 백지화됐고 이란 핵합의도 재검토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오바마 케어도 수정이 시도되고 있다. 
26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으로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들어가고 있다. 경찰에 의해 사드 반입 저지에 실패한 주민들은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성주=연합뉴스

한일 GSOMIA와 사드 배치는 국가안보를 증진했다는 측면에서 한 장관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속도전 방식의 일처리는 정책 불신과 여론 분열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사드 반대 이유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22.7%)보다 여론수렴 절차가 생략된 정부 결정에 대한 불신(53.9%)이 컸다. 같은달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한일 GSOMIA 체결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9%에 달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한 정책은 다음달 대선이 치러진 후 집권할 차기 정부가 뒤집을 여지도 그만큼 크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0억 달러’ 폭탄 발언은 사드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정책 뒤집기’를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하나씩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정책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지만 정치적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수뇌부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국방부 장관 시절부터 사드 문제를 주도했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허버트 맥마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만 할 뿐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주무장관인 한 장관도 침묵했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해결하라)라는 말이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사드 배치에 대해 한 장관은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조기 배치 필요성에 대해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3년 동안 국방부의 수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존경 받는 군인으로서 국방부 본부 소속 현역 군 간부들과 민간 공무원들이 차기 정부 출범 직후 짊어질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을 대신 떠안는 것, 그것이 바로 안보를 걱정하고 부하들을 아끼는 한 장관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일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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