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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세이] 일렉트릭 기타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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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8 00:05:00 수정 : 2017-04-28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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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양희은과 송창식의 노래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즐거웠다. 그룹사운드도 좋아했다. 송골매, 휘버스, 블랙 테트라처럼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우리나라 그룹은 물론 레드 제플린, 이글스, 퀸과 같은 이국의 그룹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최고였다. 끊기듯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에 가슴이 다 졸아들었다. 나도 저렇게 기타를 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은 늘 바빴다. 결국 기타를 배울 마음조차 먹어보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노래 후반부에서 기타리스트는 어김없이 솔로 파트를 연주했다. 그래, 저거였어.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과 오랜 상담 끝에 초보자용 기타를 장만했다. 수소문해서 기타 선생님도 구했다.

윤철호 선문대 교수·산업경영공학
실용음악을 전공한 아들뻘 선생님은 레슨 첫날 “통기타를 좀 치셨다니 금방 배우실 거예요”라고 격려해 줬다. 그런데 실력이 금방 늘리는 만무했다. 우선 연습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 한두 시간은 연습해야 한다고 과제를 내주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에 두 시간 하기도 어려웠다. 3개월이 지나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매번 혼났다. “이 정도면 중고등학교 애들은 일주일이면 마스터한다고요.”

다음에는 손가락이 문제였다. 왼손의 네 손가락으로 기타 지판의 정확한 위치를 짚어야 했으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피크를 잡고 맞는 줄을 튕겨야 했다. 템포는 왜 그렇게 빠른지. 리듬에 맞추려고 허둥지둥 따로따로 노는 손가락으로 악보를 쫓다 보면 그 어설픔에 헛웃음이 나왔다. 손놀림이 둔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그러게 좀 젊었을 때 시작할 걸 하는 자책이 앞섰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이해해 줬다. 진도도 천천히 나가는 걸로 은연중에 합의를 보았다. “기타를 잘 치려면 기타와 친해지는 게 중요해요. 친해지려면 같이 놀아줘야 해요”라면서 가능하면 매일 펜타토닉 스케일을 연습하는 게 좋다며 악보를 건넸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5음계 스케일인데 기타 지판의 전반을 거의 사용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러니 이 스케일을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왼손과 오른손이 부드러워진다. 조금씩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기타를 다루고 있다는 실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기법도 하나씩 배워 나갔다. 생소한 기법을 배워 나가는 것은 고통이자 즐거움이었다. 레퍼토리도 하나씩 늘어났다.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의 솔로 파트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1년이 돼 간다.

드디어 ‘호텔 캘리포니아’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실력도 좀 붙겠지. 그렇게 되면 밴드를 하고 싶다. 열정만 있고 실력은 형편없는 머리 하얀 기타리스트를 끼워 줄 밴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은 홍대 클럽을 빌려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공연도 하고 싶다. 맥주를 들이켜며 그 옛날 추억의 레퍼토리로 신나는 밤을 보내야지. 한바탕 다 함께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좀 평소 하고 싶었던 일, 이런저런 이유로 밀쳐놓았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충분히 있다.

윤철호 선문대 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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