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어머니 벽 넘어… 인생에 남기는 ‘황홀한 흠집’

입력 : 2017-04-27 19:58:35 수정 : 2017-04-27 19:58:3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수경 첫 소설집 ‘어머니를 떠나기에…’
“삼각형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 않겠어요? 정삼각형이 아니라고 해서 삼각형이 아닌 것도 아니고 또 반드시 그 형태가 삼각형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수학에 관한 대화가 아니다. 마흔아홉 살 여자가 불륜을 ‘이루기’ 위해 만난 남성에게 하는 말이다. 이 여자, 20년간 어학원 강사 생활을 하며 남편을 벌어 먹였다. 남편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쿨한 성격인데 단점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 것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학원 수강생이 모두 사라져 퇴출당한 날 그녀는 호텔에 들어 마지막 수강생이었던 남자와 교신을 한다.

그녀는 어머니가 심어준 고정된 삼각형의 무의식을 떨쳐내고 “순수하고 깨끗한 것들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나 정작 남자는 열정, 헌신, 친밀감이 빈틈없이 균형을 이루는 정삼각형 사랑을 원한다. 결국 “사십대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 인생에 한 번쯤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흠집을 남기고 싶었던 낭만적인 갈망”은 식은 재가 되는데, 그녀는 “그래도 만약 누군가가 내 인생에서 마흔아홉 살은 어떤 의미의 나이였느냐고 물어봐준다면, 나는 마흔아홉 살은 내 마음속의 어머니를 비로소 버릴 수 있었던 나이였다고 대답해 줄 것 같다”고 되뇌인다.

소설가 이수경(59·사진)이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18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어머니를 떠나기에 좋은 나이’(강)에 수록된 단편 8편 중 표제작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이 단편집은 올해 ‘무영문학상’도 수상했다. 이화여대 영문과와 동대학원 여성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작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녀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아 집필 생활에 몰두할 수 없었다. 초기에 썼던 단편과 2014년부터 재개한 작품들을 모아 뒤늦게 단편집을 내게 된 배경이다.

표제작의 ‘삼각형’에 대한 문제의식은 등단작 ‘가위바위보’에서도 보인다. 창졸간에 첫 배우자를 잃어버렸던 남자는 여자에게 “이제 저에게 삶은 안정감 있는 사각형이 아니라 언제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지 모르는 역삼각형, 또는 어디로 굴러가지 모르는 타원형 같은 것”이라고 말하거니와 작가는 여일하게 고정된 생의 도형과 씨름해온 셈이다. 표제작과 함께 투병 후 쓴 단편 ‘작고 마른 인생’도 박완서나 양귀자를 연상케 하는 인생파 소설이다. 이수경은 “늦게나마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의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