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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11) 비단 옷자락이 한들한들

입력 : 2017-04-26 21:50:25 수정 : 2017-04-27 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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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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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리나 쉬자며 시작한 세월호 이야기에 점심이 늦어졌다. 간드룩에서 오는 길에 알게된 싱가폴 친구와 란드룩 한 로지의 식당에 앉아있다.

“그런데, 앗!  나 여기 왔었어!”

낯이 익다 했더니, 지난번 ABC 트레킹을 다녀오며 일행들과 갈라져 따로 들린 바로 이곳이었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런 우연들은 다른 때보다 강한, 마치 무슨 운명 같은 느낌과 함께한다.

그해 산꾼들 몇과 ABC 트레킹을 하다가 일행들은 도중에 더 걷기를 멈췄다. 그네는 뉴브릿지에서 간드룩 쪽으로 가서 짚차를 타고 포카라로 떠났고, 계속 트레킹을 하려던 나는 란드룩으로 내려왔더랬다.

오랜 시간이 아니지만 까마득한 순간들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일상에 묻히거나 너무 먼 거리 때문에 아주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내가 두고 왔던 어느 한 때가 그리 되살아났노니. 당시 산을 내려간 일행들과 떨어져, 트레킹을 계속하던 또 다른 동행인 하나와 낮밥을 먹은 약간은 쓸쓸했던 그 식당이 여기라니. 같이 먼 나라로 가서 그만 갈라져버렸던 불편함이 그간 ABC를 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까닭 하나이기도 했으리.

우리 삶은 우리가 살아왔던 날들로부터 결코 도망가지지 않는다니까. 달아나더라도 결국 대면해야하는 것이 생이고 만다.

“이제 가야겠어.”

싱가폴 벗과 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는 여기서 묵고 톨카로 내려간다 한다.

네팔을 떠나는 날을 따져보니 같은 날이다. 그는 낮이고 난 밤이지만. 그가 카트만두에서도 만날까 했지만, 약속이 생기면 쫓기게 됨을 안다. 안녕. 

“한국에서 보기로!”

<<사진 = 란드룩에서 포레스트 캠프로 오르지 않고 톨카로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 속의 아이들>>
로지 주인에게 포레스트 캠프의 방향을 물으니 돌아갈 것 없이 식당 뒤로 해서 마을길로 질러가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또 길을 헤맨다.

그때 돌담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손짓했다.

“여기야, 여기. 일루 와!”

말이 아니었고 그저 손짓이었지만. 행색으로 아는 거지, 가봐야 어딜 가겠어, 트레킹이겠지 하는.

마을을 벗어나자 다시 길을 모르겠다. 대개는 트레일을 뜻하는 흰색과 파란색의 표시가 바위 혹은 나무에 그려져 있지만 초행자에겐 그리 친절하지 않다.

마을에서 올라온 길 끝에서 벌써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하다 왼쪽을 택해 가보지만 또 얼마 못가 벌써 이 길인가 저 길인가 하는데 나무를 하러 산을 오르는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빨리 빨리!”

영어는 몰라도 이 정도의 한국말은 다 아는 네팔리들이 절벽 같은 산길을 뛰다시피 앞서가며 채근한다.

<<사진 = ‘저기까지 올라갔는데 가려는 길이 아니라면...’  최대한 사진기의 줌을 당겨 팻말을 보려지만... 그때, 나무를 하러 올라온 마을 사람들이 마르디 히말로 가는 길임을 알려주었다.>>
<<사진 = 포레스트 캠프로 가는 너덜 길>>
<<사진 = 포레스트 캠프로 가며 돌아서서 떠나온 란드룩 쪽을 보았다.>>
떠나려던 기차에 막 올라탄 것처럼 그렇게 마르디 히말 트레일에 정신없이 올라섰더랬다, 서고야 말았다. 90도는 바로 이런 각이라고 느낄 만큼 몰아치는 길이었다. 끝까지 채운 호흡을 몇 순배 보낸 뒤 수직으로 오르기만 하던 길은 숲을 가로 자르며 평온해졌다. 나중에 이번 트레킹의 첫 손가락에 꼽는 길이 된 바로 이곳은 컴컴할 정도의 깊은 숲길이 마치 뉴질랜드의 국립공원인 양 그리 이어졌다. 이러니 간드룩에서 만났던 가이드가 ‘거기 정글’이라 했을, 그래서 위험하다며 ABC 같이 가자했던.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다. 길은 경사도가 퍽 높은 곳 더러지만 가벼운 산책로처럼 수월한 곳도 또한 오래다. 게다가 외길.

해가 짱짱한 날이어도 볕이 닿기 어렵겠는 길이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은 길은 숲이 주는 고요가 잠겨 아득한 경건의 세계로 사람을 이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조용함으로 속안(俗眼)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한국에 두고 온 사람 하나가 다시 여기까지 따라왔다. 이 아린 곳이 가슴이구나, 그렇게 되살아나는 사람, 생각도 관성이 있어서 풀자고 하는 말들이 외려 오해를 낳고 끝끝내 그렇게 그 끝을 모르겠는 길로 가버린. 다시 비행기에 오를 땐 가져왔던 숙제를 다 하고 갈 수 있을지. 산을 내려오는 네팔 젊은이들 무리를 만났고, 곧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혼자 내려오는 여자도 마주친다. 씩씩한 여자들을 정녕 사랑한다!

우거진 나무로 오롯한 길은 속내평을 곰파게 한다. 걷는 동안 두고 온 것들이 혹은 내일의 것들이 내 발보다 빨리 가 있기도 했고 따라오기도 했다. 혹 지나쳐서 먼저 빨라진 걸음으로 내 영혼이 뒤처져 있지 않은가 가끔은 뒤를 돌아보았네. 5시, 길이 끝났다. 옅은 안개가 어둠처럼 감겨있는, 로지 세 개가 전부인 포레스트 캠프. ( 간드룩 - 란드룩 - 카르고 포레스트 캠프). 


<<사진 = 포레스트 캠프>>
만들어진지 7년이라고 했다. 막 시즌이 시작되어 손님이라고 아직 없는. 그래서 방도 값싸게, 원하는 방 어디라도 고를 수 있는.

그 옆에 주인네의 조카가 또 로지를 짓는단다. 인도에서 온 목수 둘이 더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난로를 피우고 둘러앉았다.

“이 댁에도 마들 있지 않아요?”

우리의 장구쯤 되는 전통악기, 규모는 더 작은, 마들을 들먹이자 사우지(주인장을 일컫는 네팔어)가 탬버린까지 꺼내온다.

마들을 안은 사우지가 탬버린은 내게 들려줬다. 우리네 아리랑 같은 그들의 ‘렛산 피리리’부터 같이 부른다.

“‘렛산 피리리리 렛산 피리리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리리리”

(비단 옷자락이 한들한들 비단 옷자락이 한들한들~

날아가자~ 산골짜기에 비단 옷자락이 한들한들~)

<<사진 = 포레스트 캠프, 로지의 밤>>
마들을 잠시 배워 연주도 하였다. 감탄한다. 우쭐해한다. 사실은 처음 하는 연주라고 했지만 가끔 설장구 공연을 하기도 하는, 장구 좀 치는 걸. 

“들었으면 하기도 해야지!”

노래가 건너다니고, 자겠다고 이미 들어간 한 친구도 불려나온다.

“노래가 있으면 춤도 있어야겠지?”

주고받고 간들간들 몸들도 흔들자 마르디 히말의 밤도 깊어가며 출렁였다.

“이런 건 그냥 보는 게 아니야!”

사우지를 부추겨 여러 노래를 들으며, 나부터 지폐 한 장을 내놓고 사우니(주인아줌마)며 사람들 모두 관람료를 얹으라 한다. 저 돈을 어쩌는 걸까,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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