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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300여년 전 '청구영언'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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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6 19:35:21 수정 : 2017-04-26 19: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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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영언'에 실린 첫 시조 '오늘이소서'.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국어 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시조 ‘하여가’(何如歌)다. 조선의 건국을 앞두고 이방원은 정몽주를 회유시키기 위해 이 시조를 읊었다. 이에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했다. 정몽주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방원은 그를 선죽교에서 죽였다.

7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시조의 원형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중인이었던 김천택이 1728년 지은 청구영언은 개인 문집이나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곡(歌曲)의 노랫말 580수를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그동안 일반에 공개된 적 없었던 청구영언의 원본과 우리나라의 노랫말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전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 이야기’를 오는 28일부터 개최한다.

‘우리나라 노래’라는 뜻을 지닌 청구영언에는 윤선도, 정철 등 고려 말부터 편찬 당시까지 가곡의 노랫말이 한글로 실려 있다. 청구영언이 편찬되면서 우리말 노래를 쉽게 익히고 전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청구영언의 원본은 학계에서도 몇몇 연구자를 제외하고 공개된 적이 없었다. 26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김희수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청구영언 원본은 상설전시실에서 잠시 공개된 적은 있지만, 특별전 형태로 나오는 것은 최초”라며 “국립한글박물관이 입수하기 전까지 인사동 고서점에 있던 청구영언 원본을 실제로 본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청구영언 이본 10점과 성호 이익의 형인 이서가 만들어 연주했던 거문고인 ‘옥동금’(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과 조선 후기 거문고 악보인 ‘어은보’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청구영언의 420번째 노랫말인 ‘푸른 산도 절로절로’를 현대 음악으로 재해석한 노래와 가창 이동규가 부른 가곡 ‘벽사창이 어른어른커늘’도 들어볼 수 있다. 김 연구관은 “가집인 청구영언은 지금까지 시조집으로 알려졌으나, 가곡과 시조는 분명히 다르다”며 “가곡은 전문 가객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지만, 시조는 대중들이 반주 없이 편하게 불렀던 노래”라고 설명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권순회 한국교원대 교수, 신경숙 한성대 교수, 이상원 조선대 교수와 함께 청구영언의 노랫말을 모두 현대어로 번역했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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