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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10)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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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8 09:00:00 수정 : 2017-06-12 13: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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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생각해보니 2014년엔 봄꽃을 즐긴 적이 없네요. 그 봄에는 오직 잠수하여 선내로 진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혔는지, 꽃이 피는지, 누가 꽃 아래로 걷고 멈추고 앉는지, 꽃가지를 꺾어 거실 꽃병에 꽂아 두는지, 또 누가 시들어 가는 꽃을 밟으며 지나가는지 몰랐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히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고우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지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 

바디 팩 삼백 개도 주지 못할 만큼 이 나라가 가난한가 그런 생각도 솔직하게 했습니다. ...정육면체 쇠틀로, 안은 텅 비고 밖은 철망을 두른,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를 주사위 모양의 물체가 바지선에 도착한 겁니다. 멍텅구리 정육면제, ‘멍텅’. 실종자를 한 분씩 모시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시신을 한꺼번에 넣어 끌어올리라고. 

(김탁환, <거짓말이다> 가운데서)

 트레킹 2일차: 간드룩-란드룩-포레스트 캠프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물길을 찾는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아래로 가니까. 두어 차례 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렸지만 탈 없이 중심 길을 찾았다. 간드룩에서 란드룩을 향해 모디 계곡으로 낭떠러지처럼 비탈진 무수한 계단을 내려가다 숨을 돌리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가이드를 앞세우고 여자 둘이 올라왔다.

어디서 왔느냐, 오늘은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까지 가느냐, 오는 길이 어떻더냐, 네팔은 몇 번째냐, 어떠냐, 으레 길에서 마주친 이들의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체코에서 온 그들은 ABC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배낭을 다시 매려는데, 여자 하나가 가이드를 앞세우고 계단을 내려섰다. 싱카폴에서 온 그녀는 트레킹까지는 아니고 란드룩에서 묵고 다시 포카라로 돌아간다지. 란드룩까지는 같이 가는 걸음일 테지만 아무래도 더딘 이이와 걸음을 맞추기는 어렵겠다.

“그럼, 란드룩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기로.” 

계곡에는 철제 다리가 놓여있다. 맞은편에서 꼴을 진 열댓 살 사내아이가 걸어 오길래 생각난 듯 손전화를 꺼내는데, 벌써 눈앞에 다 와버렸네. 그래서 생각난, 나이 열두 살이면 집안을 건사해야지, 그렇게 산마을에서 제도학교를 다니는 대신 어미 일을 거들며 자란 한 아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사진= 간드룩에서 란드룩으로 가가위해 모디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사진 = 간드룩과 란드룩 사이에 있는 모디 계곡의 다리.>>
<<사진 = 간드룩과 란드룩 사이에 있는 모디 계곡의 다리. 저만치 꼴을 지고오던 사내아이가 금세 쑤욱 눈앞으로 왔다. >>
란드룩으로 오르는 길, 비탈진 길을 오르다 돌로 된 쉼터에서 땀을 닦자니 세 곳에서 물소리가 모인다. 막 지나왔던 모디 콜라와 오른편으로 안나푸르나 뉴브릿지 쪽 폭포와 뒤쪽으로 란드룩 어디쯤에서 일으키는 물소리. 더하여 아이들 소리가 얹힌다. 어디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세상은 계속된다.

“전에는 애들이 길에 그리 많은 줄 몰랐어요. 물꼬를 만난 뒤로 아이들이 보이더라구요.”

한 친구가 세상에 아이들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양 했던 말이었다. 관심이 가면 보인다. 들꽃도 그리 알게 되지 않던가.

소리를 따라 두고 온 사람 하나가 여기까지 집요하게 따라온다. 다시 밟기 시작한 돌계단마다 무수한 말을 하지만 맥없는 사랑처럼 모다 흩어지고 남는 말은 불과 몇 자, 몇 문장.

당신에게 보낸 무수한 글월의 목적이 다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겨우 한 마디라도 닿을 수가 있다면. 안타까운 관계 하나에 이르는 길도 이 여행에서 만날 수 있다면.

<<사진 = 란드룩 여염집>>
<<사진 = 2014년 11월 길을 닦고 있던 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란드룩 마을 사람들>>
<<사진 = 란드룩 쪽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
<<사진 = 란드룩 끝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간드룩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칭물처럼 있는 란드룩 역시 규모가 꽤 크다. 그런 만큼 곳곳에 식당도 널렸고, 식당을 포함한 로지 또한 흔하다. 2014년 가을 파헤쳐져 있던 길은 얌전하게 차려져 있었다.

마을길에서 싱가폴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도 구하고 묵을 곳을 예약했다 하니, 점심을 먹기에 아무렴 믿을만한 식당일 거라는 셈이었다. 마을 양편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담장 없는 집들도 많아 그들의 삶을 기웃거려보기도 하며 해찰을 하고 앉았다. 돌이 흔하고 그 돌을 가지런히 쌓은 집들의 비질로 윤기 나는 마당은 산사의 앞마당을 떠오르게도 했다.

지나온 곳 어디에 묵어버리려나, 목을 길을 빼고 있자니 그의 가이드가 먼저 나타났다.

그들이 묵을 로지의 마당 식탁에 앉았다. 우리의 대화는 내 왼 손목의 세월호 노란 기억밴드부터 시작되었다.

“이건 기억의 의미야,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지. 데모이기도 한. 3년 전 큰 여객선이...”

“나, 알아!”

2014년 4월 16일, 그는 어머니와 제주도를 여행하고 있었더란다. 마침 동생이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고.

“... ‘움직이지 마!’, 안내방송이 그랬어!”

그가 말했다.

지금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이 공허한 물질적 안락’이지 않냐는 노교수의 글도 곱씹고, ‘우리 삶이 안락하기는 커녕’ ‘인간다운 삶의 근본기반’마저 망실했음을 되냈다.

세월호로 시작한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미 클라인의 책으로까지 이어졌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3년 이라크전, 9.11테러와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람들이 엄청난 재앙에 놀라고 당황할 때 다국적 기업이나 통치 세력들은 자신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한다던 일명 재난자본주의 (<쇼크 독트린>).

그리고, 이런 재앙들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시민사회가 재구성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출발점을 만들고, 이타주의라는 인간본성과 연대의식을 경험하게 된다던 <폐허를 응시하라>.

어눌한 말의 열변이라니.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들처럼 여행지에서 채 한 시간도 안 돼 아주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믿어지게 되는 경험이라니. 갑자기 절친이 된 우리는 사적인 이야기로 옮아갔다. 아이 셋을 둔 주부인 그는 어머니를 보내고 삶에 대한 큰 변화를 겪었단다. 도시의 삶, 자본 아래서의 삶, 이 시대의 삶에서 그 흐름으로부터 큰 집 큰 차 대신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자연히 내가 꾸리는 산골작은배움터 자유학교 물꼬로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치 않아, 그래서 단순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뭘 가르치겠어, 나부터 잘 살아야지, 하고 아이들의 학교에서 어른의 학교로 더 큰 비중을 가진 학교라는.

“우리 어른들이 행복해야 그걸 보고 아이들도 꿈을 꾸지 않겠어? 아, 어른이 된다는 건 저렇게 괜찮은 거구나 하고 말이야.”

어찌나 맞장구를 치는 그이던지.

“올해부터 템플스테이 수도원스테이 같은 일정을 해볼까 해.”

반기며 아이들과 오고 싶어했다. 거기에는 내가 보여준 우리 아이의 사진이 한몫했다,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마침 7월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던 그였다. 그전에 한국의 템플스테이도 간 적이 있다지.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과 강한 약속은 피한다. 여행이 주는 특수한 상황이 혹 약속을 남발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머나먼 곳에서 만난 가치관이 비슷한 두 여자는 아주 오래 알아왔던 사람으로 구체적인 약속을 잡게 되더라. 

어, 그런데 이 식당은...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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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간드룩에서 모디 계곡으로 내려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쪽을 보면.>>
<<사진 = 안나푸르나 뉴브릿지에서 란드룩으로 오는 길에 있는 폭포>>
<<사진 = 2014년 11월 길을 닦고 있던 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란드룩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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