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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 이뤘지만 자유·인권 속박하는 봉건왕조 국내외 전문가들 가운데 중국공산당을 낭만적으로 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는 공산당 혁명을 미화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무슨 말인가. 소련의 철권 통치자 스탈린이 보낸 첩자들이 만든 소비에트가 중국공산당의 시초였다. 20여개 소비에트 대표들이 1921년 상하이 프랑스 조차지 내 비밀 아지트에 모여 결성한 게 중국공산당이다. 신중국이 선포된 1949년까지 스탈린은 3억달러 안팎의 큰돈을 중국공산당에 지원했다. 그러면서 소련식 혁명 즉, 도시 노동자와 도시 빈민이 주도하는 폭동을 부추겼다. 마오쩌둥은 후난성 샹탄현 사오산충 출신 촌놈 취급을 받으면서 초기 소비에트의 핵심에 들지 못했다. 당시 저우언라이, 류사오치 등 소련 유학파들이 핵심 멤버였다. 애초 마오쩌둥은 중국의 근대 사상가인 량치차오, 후스, 쑨원 등에 흥미를 가졌으나 빈한한 출신인지라 그런 축에 끼이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득세한 배경에는 스탈린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파벌 싸움에서 패배할 때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손을 잡아주었다. 스탈린이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을 낙점해 꼭두각시로 이용한 과정과 흡사했다. 다만 마오쩌둥의 경우 훨씬 시간이 더 걸렸고, 큰돈이 들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마오쩌둥이 스탈린의 눈에 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격전술을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봉기해 세상을 뒤집는 레닌식 방식은 농촌 중심의 중국 실정에는 맞지 않았다. 마오쩌둥 혁명군은 자신들을 반일, 반제국주의의 깃발 아래 노동자·농민이 만든 소비에트의 혁명군이라고 선전했다. 말이 혁명군이지 비적 떼나 다름없었다. 이들이 지나간 지역, 마을마다 살육, 방화, 약탈로 폐허화되었다. 마치 6·25전쟁 초기 천민들이 완장 차고 양민을 학살한 바로 그런 부류였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득세 배경이나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은 유사했다. 마오쩌둥 역시 스탈린만큼이나 의심 많고 신의가 없으며, 기만전술에 능했고, 권력의 화신이었다. 마오쩌둥의 반인륜적 범죄는 스탈린을 비롯한 21세기 다른 독재자들의 사악한 행위 못지않게 끔찍했으며 그 규모 면에서 훨씬 컸다. 스탈린을 따라했던 마오쩌둥에게는 자유, 인권, 평등 같은 인류 보편적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반대파를 자산계급으로 몰아붙여 제압한 다음, 중국을 거머쥔 공산당 엘리트들은 또 다른 권력층 지배 계급으로 변질되어 신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그림자 권력기관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가 비준한 중국 헌법에 드러나지 않는 초헌법기관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법칙대로 움직인다. ‘중국공산당 장정’(당규약)이 그것이다. 당규약에는 애초 인간의 기본권 같은 개념은 없다. 그렇다고 마르크스 정치 이론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공산당과 그 엘리트, 일족들이 지배·감시하는 나라가 지금의 중국이라면 과장인가? 중국공산당은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도시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노동자·농민·도시근로자는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 계층에 머물러 있으며, 전근대적 시대에 머물러 있다. 봉건 왕조의 청나라 시대나 공산당 왕조 현시대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런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기본 인권과 자유,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한국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맛대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제국주의적 습성은 시진핑 주석이나 아베 신조 총리나 다를바 없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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