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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볼트와 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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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4 01:15:15 수정 : 2017-04-24 0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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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구(1944∼2016)
이것은 어느 집성촌 입주예정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너도 이곳에 편입하려면 강단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하리라
장수를 위해 갈고 닦고 빛나게 기름칠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결합을 넘어선 또 다른 문제, 집성가문의 불문전통이며
맹목의 추종을 비틀어버리고 이성의 옷깃을 밀도 있게 여밀 줄 알아야 하며
각진 모자를 쓰고도 세선의 무늬를 안팎으로 장식해 다스려야 한다
둥글지만 주름 없는 정신이란 미끄러질 뿐 소용없다
파문의 뒷모습일지라도 필연으로 끌어안고 품어줄 줄 알아야 하며
세세한 견문 높게 평가한다고 나를 너무 내세우면 볼썽사납게 된다
너트와 볼트……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깍지를 끼고 있을 때에도
인도교나 금문교를 살피고 온 경력들까지
어느 집성촌을 단단히 묶고 있었음을 본다


평소에 남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끼거나 곤혹스러운 일을 당할 때면 필자는 ‘난 저렇게 행동하지 말자’ 하고 속으로 다짐하는 버릇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2, 3시간씩 훈계를 자주 듣곤 했는데 이때부터 그러한 습성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하여 지금도 변하지 않은 나의 다짐은 ‘나이 들어 난 절대 남으로부터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리라’다.

김영남 시인
이러한 소신은 시 쓰는 일에 까지 이어진다. ‘나만큼은 절대 다른 시인들로 부터 꼰대 시인의 취급을 받지 말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 시인들보다 많이 읽고 공부하며 그들보다 더 박진감 있는 시를 써 내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의 탄력 확보를 위해 한층 더 노력하자”다. 물론 결과가 그렇게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다짐만큼은 그렇다는 뜻이다.

인용시는 필자의 소신에 부합하는 좋은 사례 시가 아닌가 싶다. 시 ‘볼트와 너트’는 69세에 당선된 김준구 시인의 신인작품상 수상작(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3년 봄호)이다. 그 나이에 이런 시를 썼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볼트와 너트라는 까다로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경험과 지혜를 동원해 젊은 감각 이상으로 참신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역량이 놀랍다. 이후 시인은 비슷한 수준의 시를 10여편 발표하고 지난해 6월, 안타깝게도 폐암으로 세상을 뜬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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