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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북한 위협에 군이 바보를 자처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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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3 09:00:00 수정 : 2017-04-23 11: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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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초기 분석 중입니다. 좀 더 면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우리 군의 감시 및 평가 결과가 노출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답변하기가 제한됩니다.”

해안에 배치된 북한군 107㎜ 방사포대가 전방을 향해 로켓탄을 발사하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 행위가 발생했을 때 군 당국에 관련 문의를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답변 중 하나가 바로 ‘모르쇠’다. 표현의 수위나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의미는 동일하다. 특히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공중폭발하거나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같은 형식의 답변이 빠지지 않는다. 외신에서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 동향 등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보도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북한 관영매체가 탄도미사일 발사나 군사훈련 등을 공개하면 북한이 공개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언급이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듣는 사람들은 군이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군 당국은 정말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까? ‘그렇다’라고 믿기에는 군 당국과 정부가 기존에 밝혀왔던 정보루트들이 걸림돌이다. 미군으로부터 제공받는 위성 영상을 비롯한 정보와 우리 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감청을 통해 확보하는 정보, 북한이탈주민이 제공하는 정보, 북한 관영매체 보도 분석을 통해 유추하는 정보 등 다양한 경로에서 대북 정보가 군에 유입된다. 입수된 정보를 융합 및 분석해 북한의 의도를 알아내는 분석가들도 군 조직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군 당국은 대외적으로 ‘바보’를 자처한다. 왜일까.

신호정보 수집을 위해 설치된 위성 안테나들.
◆ 얽히고 설킨 정보전 “우리 능력을 숨겨라”

어둠의 장막에 가려진 채 은밀히 진행되는 정보전쟁은 카드놀이와 비슷하다. 카드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패를 철저히 감추면서 상대방이 공개한 카드 외에 숨기고 있는 패는 무엇인지, 다음 수는 어떤 것인지 필사적으로 알아내려 한다. 때로는 블러핑(상대를 기권하게 하려고 거짓으로 강한 베팅이나 레이스를 하는 것)을 하면서 상대를 속이려 하기도 한다.

남북이 수십년 동안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정보전쟁도 마찬가지다. 우리 측과 미군은 북측이 갖고 있는 패를 들여다보기 위해 북측 내부의 협조자가 보내오는 인간정보(HUMINT), 감청 등을 통해 확보하는 신호정보(SIGINT), 위성이나 정찰기에서 촬영한 영상정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의 특성상 인간정보를 통한 정보수집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수집은 정찰기와 신호정보 수집기, 인공위성, 지상 감청시설 등을 통해 북한 교신을 엿듣는 SI(Special Intelligence) 첩보에 의존한다.

SI 첩보는 북한 도발 징후를 파악하거나 도발이 발생한 이후 북한군의 움직임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북한이 강원 원산 해안에서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한다고 가정하자. 전문가들은 지휘소와 이동식발사차량(TEL), 관측소 간의 교신내용이나 미사일 발사에 쓰이는 전자장비 주파수 등을 포착하면 관련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SI 첩보가 공개되면 북한이 우리 군의 정보수집능력을 인지하고 무선 암호와 통신체계를 변경하거나 역정보를 흘려 우리 군의 대북 정보 공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군 당국이 북한 동향을 알고도 모른 척 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군은 북한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모르쇠’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북한의 선전선동기법은 큰 변화를 맞았다.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되는 영상이 디지털방식으로 송출되면서 화질이 크게 개선됐고, 노동신문도 PDF 파일로 제공되면서 제한적이나마 디지털사진을 볼 수 있게 됐다. 감청이나 위성사진 등으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북한 매체가 찍은 사진과 영상은 근거리에서 촬영된만큼 정보가치가 높다. 김 위원장을 어떻게 노출시키는지, 등장하는 무기는 예전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수행간부들의 지위 변화는 없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매체가 공개의 폭을 넓힐수록 우리 측에는 도움이 된다. 지난해부터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추정될 때, 군 당국이 구체적인 분석결과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면서 북한 관영매체의 동향을 예의주시 하는 것도 이같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ICBM.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열병식 사진들은 북한 미사일 전력 평가에 좋은 참고자료가 됐다. 노동신문
실제로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는 새로운 형태의 ICBM 발사대가 등장했으며, 열병식에 참가한 부대의 지휘관 이름과 계급도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 2월 북극성-2형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서 주로 쓰이는 콜드런치(수직으로 발사된 미사일을 공중에서 점화, 비행시키는 방식) 과정이 조성중앙TV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되면서 북한 미사일 기술 수준을 확인하는데 참고자료가 됐다.

◆ 정보보호 필요하지만 부작용 가능성도 있어

우리 군의 정보수집능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들도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정보를 공개하며, 자신들의 견해를 밝혀야 할 상황에서는 공개된 기법을 사용해 설명한다. 미군이 지난 6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으로 시리아의 알샤이라트 공군기지를 공습한 직후 미 해군은 공군기지 타격 결과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 때 사용된 것은 상업위성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군사정찰위성의 성능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미군의 시리아 공습 하루 뒤인 7일 미군이 공개한 시리아 알샤이라트 공군기지 위성사진.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으로 곳곳의 시설이 파괴된 흔적이 보인다. 미군은 군사정찰위성이 촬영한 사진 대신 상업위성회사인 디지털글로브의 자료를 공개했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군과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에 대해 지나치게 비밀주의를 유지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비밀정보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진다.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조직의 이익에 악용될 수도 있다.

1950년대 미소 냉전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우리의 로켓은 하늘을 나는 파리도 맞출 수 있다”며 미국을 위협했다. 여기에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발사하자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아 존 F. 케네디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하지만 실제 SS-4 등으로 구성된 소련의 로켓 부대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설계 당시 성능을 충족시킨 것은 없었다. 발사 준비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다 결함도 많아 운용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일으켰다. 미국은 소련 GRU 요원이었던 올레그 펜코프스키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1961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함으로서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 과정에서 이 정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소련 미사일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만 했고, 이는 미국 국방비 증가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초계비행에 나선 공군 피스아이 조기경보통제기와 전투기 편대. 공군 제공
국내에서도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6년 10월 정부는 “북한이 서울의 3분의 1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최대 저수능력 200억t 규모의 금강산댐을 건설한다”며 수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국민적 규모의 성금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TV를 통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물에 잠기는 영상을 본 시민들은 기꺼이 성금을 냈다.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 직후 조사 결과 수공 위협설은 정권 후반기 국면전환을 위해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정보수집 활동을 통해 한강 저지대 일부만 침수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정하지 않았다.

해군 이지스구축함 서애 류성용함. 이지스함은 북한 미사일 발사를 추적하면서 궤적 등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군 제공
정보는 국력이다. 군과 정보기관의 소리 없는 헌신은 국정 운영의 기초이자 국가안보의 초석이다. 그들이 수집한 정보를 보호하고 정보수집능력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밀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보에 대한 비밀주의가 지나칠 경우 정보 독점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가 공공의 이익이 아닌 특정 조직의 권익 보호나 정략의 수단으로 이용된 사례가 적지 않아 정부가 확보한 정보의 공개 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정보공개 요구에 힘을 실어준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알 권리 증진 및 정치적 악용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 군이 ‘바보’가 아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줄 아는 ‘현명한 바보’가 되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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